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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r 13. 2021

너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

미국에서 반려견과 함께 여행 다니기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면 항상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속 가족들은 모두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지만, 유독 피곤한 표정으로 카메라에서 시선을 피하는 얼굴 하나가 거기에 있었으니 바로 우리 집 반려견 하루다. 그럴 때면 사진을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옆에 드러누워 태평하게 낮잠을 자는 녀석을 괜히 한 번 째려본다. 내가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숙소를 찾는 수고를 마다않고 어디를 가든지 너를 데리고 다니는데, 굳이 그렇게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야겠니?

 



생후 3개월이 채 지나지도 않은 강아지 하루를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반려견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대소변도 잘 가리고, 특별히 나쁜 습관도 없었으며, 가족들이 외출할 때에도 "다녀올게~" 한 마디면 얌전히 제 자리로 발길을 돌리던 영리한 녀석이라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뿐. (물론, 배변 훈련과 외출 훈련을 열심히 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도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예정에 없던 미국 주재원 발령이었다.


처음 주재원 발령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에서 "강아지는 어쩌냐?"는 반응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우리 가족들은 하루를 데리고 떠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을 해외로 데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우선 각종 예방 접종 증명서, 건강 증명서, 광견병 항체 검사 증명서, 검역 증명서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출국 일정에 맞춰 미리 동물 병원과 검역소에 연락해서 필요한 서류를 제때 발급받아야 한다. 또한, 사전에 항공사에 연락을 해서 동반 탑승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대형견의 경우 기내에 데리고 탑승할 수 없으며, 우리 하루와 같은 소형견은 케이지에 들어간 상태로만 동반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케이지의 종류와 크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잘 확인해야 한다.


대형견이 많은 미국이다보니 3살이 넘도록 puppy 소리를 들었다


그나마 주재원 부임지가 미국었다는 것이 하루에게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동식물 반입 규정은 나라마다 서로 다른데, 아무리 서류를 잘 준비해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동물들은 의무적으로 공항 세관에서 일정 기간 계류하도록 하는 나라들도 있다. (이 기간이 반려견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상당히 스트레스가 된다고 함)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집에 불이 나면 어린아이와 여성, 노약자 다음으로 반려 동물을 먼저 구출한다는 미국 아닌가? (누가 빠져있는지 잘 보시라) 미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고, 준비한 서류를 세관에 제출하면서 내심 긴장했지만, 세관원들은 하루를 보고 그저 "예쁘다"며 눈을 반짝였을 뿐 다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와 함께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장거리) 여행이 무사히 끝났고, 또 함께할 많은 여행들을 앞두고 있었다.


미국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말인즉슨,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만, 비용이 제법 소요된다는 뜻이다. 많은 호텔들이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보증금(non-refundable)을 받는다. 우리 가족은 종종 신용카드 제휴 포인트로 호텔에 묵곤 했는데, 가족들의 숙박비는 전액 포인트 차감으로 해결 하면서도 반려견 보증금으로만 100달러가 훌쩍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할 때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식당의 경우는 조금 달랐는데, 아무리 애완동물에 관대한 미국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식사를 하려면 야외 좌석에 앉아야 한다. 하루 때문에 식당에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야외 좌석이 없는 "맛집"을 그냥 지나쳐야 할 때는 적잖이 속이 쓰렸다.


야외 좌석이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애견 동반을 허용한다


여담으로, 미국에는 반려견을 맡길 수 있는 소위 "Pet Hotel" 서비스가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여행에 하루를 데리고 다녔지만, 어쩌다 한 번씩 가족들이 한국에 다녀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Pet Hotel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 비행 자체도 반려견에게 힘든 일이고, 한 번 드나들 때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 Pet Hotel의 서비스도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루를 혼자 남겨두고 떠난다는 생각에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이스크림이 제공되고 별도의 TV와 에어컨이 달려있다는 VIP룸의 가격은 결코 우리가 선뜻 고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돌아와 Pet Hotel로 하루를 데리러 가던 날, 빛의 속도로 달려와 가족들 품에 안기던 그 순간의 짠함이란.




가족 여행 사진 속의 하루는 여전히 피곤한 표정으로 딴청을 부리고 있다. 나는 녀석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만, 정작 하루는 나에게 그다지 고마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루를 안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들이 모두 환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가 너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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