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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r 20. 2021

모르는 사람이 내 커피값을 내줬다

일상 생활 속 미국 사람들의 유머 감각

미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출근길, 나는 사무실에서 마실 커피를 사기 위해 Drive Thru를 찾아 차를 끌고 들어갔다. 그날도 카페인의 힘을 빌어 아침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차량이 줄을 서 있었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서 커피를 주문했다. 이내 내 차례가 되어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를 건네는 순간, 나는 Casher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앞 차가 결제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 모르는 사람이 내 커피값을 냈다고? 처음 겪어보는 일인지라 당황하며 그냥 "고맙습니다"하고 차를 몰고 나왔는데, 회사에 도착해서야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1년 먼저 주재원 생활을 시작한 동료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 그날 아침의 작은 사건은 바로 "Pay It Forward”라고 불리는 일종의 "착한 장난"이었다. (원래는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을 다른이에게 갚는 행동을 의미)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 전문점 등 Drive Thru가 보편화되어있는 미국에서는 간혹 다음 사람의 음식이나 커피 값을 대신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이 기분 좋은 장난은 보통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그럼 나도 내 뒷차에 쏠게요"하는 식으로 줄줄이 이어지게 마련인데, 플로리다의 어느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무려 380여명이 11시간에 걸쳐 다음 사람의 커피값을 지불했다고 한다.

 

"앞 차가 걸어온 예능(장난)을 나는 다큐로 받았구나"하는 자책과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도 잠시, 이내 "이거 정말 괜찮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들 일하러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우랴마는, 그래도 가벼운 장난 한 번 치면서 출근길 기분 좀 “업”시켜 보겠다는 이 사람들 참 멋지지 않은가? 더군다나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을 기분 좋게 놀래켜 준다니... 센스와 유머가 넘친다. 그날 이후로는 나도 종종 Drive Thru를 이용하면서 생판 모르는 뒷차의 커피값을 내거나, 앞차가 걸어온 착한 장난을 뒷차로 이어가는데 기꺼이 동참했다.


또 어느 날인가는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주변이 차량 경적음으로 소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다가 옆 차선의 미니 밴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차에는 알록달록한 차량용 마커로 "오늘 우리 딸 생일이예요. 축하한다면 경적을 울려주세요!"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조수석에는 생일을 맞은 당사자로 보이는 10살 남짓의 귀여운 소녀가 유리창을 내리고 주변의 차량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날은 나도 주변을 지나는 다른 차량들과 함께 경적을 울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딸내미 생일을 축하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느 정도로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학기 중 하루나 이틀 정도를 "파자마 데이"로 지정해서 잠옷을 입고 등교하도록 했고, 담임 선생님 생일이 되면 생일 선물을 대신해 아이들이 다 같이 선생님이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인과 함께 "장난"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일상 속에서 작은 재미를 찾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코로나로 등교를 멈춘 학교 앞.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코알라(학교 상징)들아, 보고싶구나!”


이들의 일상 속 "유머"는 결코 풍족하고 여유있는 삶에서 비롯하는 부산물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가운데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한 일종의 “삶의 지혜"에 가까워 보였다. 항상 주변을 살펴 재미와 웃음 거리를 찾을 것. 남이 장난을 걸어오면 기꺼이 화답할 것. 그리고 좋아진 기분을 오래도록 유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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