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놀자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대충 세수를 하고 아무 옷이나 챙겨 입고 친구들과 놀러 나가기 바빴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 5일제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이 주는 해방감은 남달랐다. 휴대폰도 없던 그때는 누구든 먼저 일어나는 녀석이 동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친구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주말 아침잠을 설친 부모님들의 잔소리는 아랑곳 않고 동네 꼬맹이들은 신이 나서 자전거를 내달렸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매주 일요일은 커녕 일 년에 한 번 친구 얼굴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각자 주어진 역할대로 살아내느라 지칠 대로 지친 것일까. 간혹 전화로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아도 감히 "놀자" 소리를 꺼내지 못한다. 특히나 최근 들어 힘들다고 엄살 부리는 친구들이 늘었다. 나도 그렇고.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지만, 늘 지금 내 앞의 고통이 인생 최대의 고비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싫은 이유 중의 하나는, 힘들다고 어디 가서 맘껏 징징거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속으로만 끙끙대며 하루 하루 버티던 와중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놀잔다. 들뜬 목소리다. 주말 아침 7시까지 갈테니 잠깐 만나 얼굴 보며 얘기도 하고, 동네 농구 코트에서 공도 좀 던지고 그러잔다. 이른 아침이라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니, 만나서 놀고 일찍 들어가면 가족들한테 눈치 보일 일도 없단다. 차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서 오겠다는 친구를 차마 만류하지도 못하고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자랑처럼 말했다. "나 내일 아침에 놀러 나가"
사회 생활 초년생이던 시절, 입사 동기로 만난 친구들이었다. 각자 배치받은 조직에서 맡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에도 틈나는 대로 만나 농구공을 붙들고 땀을 흘리고, 운동을 하고 나면 짜장면에 탕수육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하나가 해외 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가 7년 만에 회사를 떠났지만 인연은 이어졌다. 조금 뜸하다 싶으면 연락해서 만나 예전과 똑같이 농구를 하고 예전처럼 짜장면에 탕수육을 나눠 먹었다.
아침 7시의 친구들은 약속 시간도 잘 지키지 않는다. 누구는 10분 전에, 누구는 5분 늦게, 또 누구는 15분 늦게 도착하지만 다들 그저 그러려니 한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마스크 속에 감추고 그저 무덤덤하게 농구공을 튕기며 어슬렁 거리더니 이내 방언이 터진 듯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서로 제가 더 죽겠다 목소리를 높이고, 또 서로 복에 겨웠다며 야유를 퍼붓는다. 저마다 제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사는지 들어보라며 "불행 경연 대회"를 벌인다. 이렇게 농구를 핑계로 만난 중년 아저씨 셋은 이른 아침 사람 없는 공원 한켠에서 펑퍼짐한 엉덩이에 농구공을 하나씩 깔고 앉아 한참동안 수다를 떨어댔다.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제법 만족스럽게 입을 털었는지 이제 아이들 깰 시간이라며 슬슬 가봐야겠다고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난다. 예전같았으면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을테지만, 오늘은 어째 다들 옷도 얼굴도 뽀송뽀송한 상태 그대로다. 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잘 놀았다"며 돌아서는 걸음들이 조금은 개운한 듯 느껴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