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Feb 20. 2021

나의 찌질한 금연

내가 두 번이나 담배를 끊은 이야기

"담배 끊은 지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금연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을 나는 참 좋아한다. 특히, "우와, 대단하시네요” 하는 칭찬과 존경 어린 시선을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기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에 내가 담배를 끊은 이야기는 그다지 "대단하지" 못하다.


나는 담배를 참 좋아했다. 체질적으로 아버지를 닮았는지, 술은 잘 마시지 못했지만 담배는 몸이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이 끝나던 겨울 방학 무렵, 친한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처음 접했다. 몇 차례 시도에도 그저 콜록거리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담배 연기가 비로소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안개 같은 연기로 다시 뿜어져 나오면서 "이거구나!" 싶었다. 아직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90년대 중반 무렵, 나는 그야말로 담배를 입에 물고 다녔다. 인생의 가장 푸르른 시절, 내 청춘의 모든 추억에는 그렇게 담배가 함께 있었다.


막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무렵에는 지포라이터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담배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적당히"를 몰랐다. 그때의 나는 어쩌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목이 찢어지도록 아플 때도 골골거리며 담배를 찾아 피워야 직성이 풀렸다. 담배 좀 끊으라고 보채는 여자 친구에게는 안 피웠다며 거짓말을 했지만, 냄새를 지우지 못해 늘 들통났다. 밤을 새워 시험공부를 하다가 담배가 떨어지면 소위 "장초"를 찾아 도서관 주위를 배회했다. 길바닥을 뒤져 찾은 꽁초를 주워 피우고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에는, 내가 누구의 강요도 없이 땅에 떨어진 뭔가를 주워 먹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처음 금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직장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가슴의 통증을 느꼈고, 두려운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폐나 호흡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금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금연 결심을 자랑스럽게 떠벌렸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금연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우습게도 이후 2주 내내 그들에게 담배를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금연 결심과 함께 출근했지만 오후가 되면 늘 흡연장을 기웃거렸고, 그때마다 회사 동료들은 내게 비웃음 섞인 야유를 보내면서도 결코 담배에 인색하지는 않았다. (흡연자들은 동지 의식이 강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금연을 유예하던 어느 날, 옆 팀의 과장님께서 내게 웃으며 "금연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그냥 피워라" 하셨다. 분명 웃으며 말씀하셨는데, 긴 칼로 가슴 한편을 쿡 찔린 기분이었다. 정말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과 함께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금연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다가 우연히 "금연도시"라는 이름의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었다. 금연도시는 담배를 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었는데, 개인이 금연 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PC에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캘린더 형태로 매일 흡연 여부를 체크하고, 금연을 지속할수록 계급(?)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매일 목표를 달성하는 재미가 있었다.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운 날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금연도시의 새로운 동지들 덕분에 비로소 나는 첫 번째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금연도시 (출처 http://www.nonsmokingcity.org/)


나는 아직도 담배는 폐로 피우는 것이 아니라 뇌로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7년째 성공적으로 금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동생의 자동차 트렁크에 놓여있던 절반 정도 남은 담뱃갑을 봤을 때 내 머릿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어보았고, 장난 삼아 한 번 불을 붙여보았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 다음 날부터 다시 흡연자가 되고 말았다. (벌써 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날의 기억 때문에 나는 아직도 담배를 아예 만지려고 시도조차 않는다)


그렇게 다시 흡연자가 되어 3년 정도 담배를 피우다가 두 번째 금연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때 내가 얼마나 "찌질한" 사람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다시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자 예전의 "금연도시”가 떠올랐지만, 금연에 성공했다며 축하해주던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차마 그곳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번째 금연을 결심하던 날, 나는 비장한 심정으로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담배와 라이터를 과감히 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저녁 무렵, 아니나 다를까 나는 마치 좀비처럼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고 다시 마지막(?) 한 대를 피웠다. 담배와 라이터를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나의 한심한 "마지막 담배" 의식은 그렇게 며칠간 계속되었고, 어느 날인가는 "오늘은 라이터는 버리지 말까?" 하는 요망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진저리를 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모양 빠지는 일이었지만, 결국 그때 나는 어찌어찌 두 번째 금연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10년째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아직도 간혹 주변에서 술 마실 때만 한 대씩, 또는 기분 전환을 위해 가끔 한 대씩 담배를 피운다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나는 안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내가 얼마나 찌질하게 아니 처절하게 담배를 끊은 사람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 7시의 친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