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청소년이 되어버린 딸아이 관찰기
우리 집은 딸이 귀했다. 딱히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에 여자 형제분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나와 내 동생이 둘 다 아들이라는 이유 만으로 우리 부모님은 늘 "우리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셨다. 그래서 둘째 손주로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하셨다. (아들이었던 첫 손주도 그렇게 예뻐하셨는데, 이번에는 딸이라고 하니 그 기쁨이 두 배가 되어 버린 것이리라) 나로 말하자면, 여자 형제 없이 남중, 남고, 공대, 군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나름 "여알못"이었다. 그런 내가 딸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내 인생에 "어머니", "아내"에 이어 세 번째 여자가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딸아이는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빨리, 내 생일에 태어났다. (딸아이는 최고의 생일 선물이기도 했지만, 정작 그 날은 아무도 내 생일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특별한 인연 덕분일까,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딸아이는 확실히 첫째 아들과 달랐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귀염과 애교가 넘쳤다. (아님 내가 그렇게 느낀 건지도) 첫째와 둘째 중 어느 한 아이에게 애정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 다짐했지만, 늘 아슬아슬했다. 난생처음 보는 “딸”이라는 존재에 나는 종종 이성의 끈을 놓고 넘치는 애정을 쏟기도 했고, 뒤늦게 이것이 첫째 아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지 눈치를 살피며 뒤늦게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렇게 거의 모든 면에서 나에게 완벽한 “딸”이었던 아이가 조금씩 달라진다고 느낀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순조롭게 동화 속 공주님처럼 커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이는 공주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집에서 아이는 공주처럼 예쁜 역할 대신, 오빠의 부하(악당 2) 역할을 하면서 더욱 즐거워 보였다. 학교에서도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면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가리지 않았고, 엄마가 정성스럽게 머리를 만져 내보내면 산발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옷이나 액세서리를 살 때면 빨강이나 분홍을 권하는 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파랑이나 검정을 골랐다. 어째서? 하고 따져 물어도 “그냥”이라는 쿨한 답변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빠의 공주님 역할을 대차게 내팽개친 딸아이는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둘째 특유의 솔직함과 거침없는 성격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 저거 할래”하고 달려들었고, 아빠의 갑작스러운 주재원 발령으로 말도 안 통하는 미국 학교에 내던져진 첫날에도 “재미있었다”는 감상을 내놓아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오빠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매서운 손으로 순해빠진 오빠를 때려서 엄마에게 혼줄이 나는가 하면, 집에서 빵을 굽는다고 온 주방을 뒤집어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무리 엄마가 정성스레 예쁜 옷을 골라줘도 자기가 활동하기 편한 옷을 고집하고, 머리를 매만져주고 묶어줘도 "예쁘다" 소리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뿐더러, 제 맘에 안 들면 그저 목욕을 끝낸 강아지가 몸을 털듯이 머리를 휘휘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떤 기질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고 그저 “딸이다!”라며 환호했던 아빠의 무지한 편견 속에서 아이는 다행히도 “아빠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 왔다. 샤워를 할 때면 항상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고, 뭘 먹을 때면 끊임없이 “맛있다” 소리를 중얼거린다. 뭐든지 일단 "할래"하며 달려들지만 덤벙대고 실수가 많아 부모의 애를 태우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 장래 희망이 탐정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가 막히기 보다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착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했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에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영혼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큰일 날 뻔했다. 이런 아이를 공주로 키우려고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