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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pr 08. 2021

어째서 나는 하기 싫은 일만 잘하는가?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새해 결심으로 최소한 일주일에 한 편씩은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두어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내가 "작가가 되어"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술술 적어내려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젠가부터 글이 처음처럼 잘 써지지 않는다. 노트북을 열어놓고 낑낑거리다 보면 귀하디 귀한 주말 두세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글을 쓴다면 아주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있는 많은 생각들에 꼭 맞는 어휘들을 고르고 이어 붙여 하나의 멋진 글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 한 줄 적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또 한 번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서 뛰어든 일에 생각만큼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펐던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림 그리기가 너무 재미있다는 아이가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를 때는, 그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해서 온 마음으로 응원을 하다가도, 마음 한편에서 “만약 나중에 좋아하는 만큼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어느 분야에서나 천재와 영재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만큼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것이, 훗날 아이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게 될까봐 두렵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우습게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맞다. 40대 중반의 아저씨인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바로 “회사 일”이다. "기획"이라는 제법 멋들어진 이름을 달고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모두 "남이 해달라는 일"이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느라 몇 시간째 낑낑대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남들이 해달라는 대로 수십 장의 보고 자료를 금세 만들어 척척 가져다 바친다. 그렇게 칭찬을 받고 능력을 인정받는 지금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누구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소위 “진실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이제껏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간혹 생각지도 못한 열정이 가슴을 훅 달구는 순간을 애써 외면했던, 남들이 하는 선택을 따라 하고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전전긍긍했던 나는 나이 40 중반이 다 되어서 커다란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너는 어째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만 그렇게 잘하게 되도록 너를 내버려 두었는가?”


글을 쓰는 시간이 마치 나 자신에게 화해를 구하는 과정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나 아닌 누군가가 원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대신,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고르는 일. 모니터 화면 속 커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제자리에서 깜빡이는 동안, 나는 내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듣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비록 그 이야기가 대단치 않더라도, 잘 쓰지 못해도 계속 써 보려고 한다. 그래야 다음번 "진실의 순간"에는 제법 그럴싸한 변명이라도 늘어놓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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