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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01. 2021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지내고 있을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하시던 사업을 조만간 정리한다는 이야기였다. 새삼 아버지의 연세를 헤아려보고, 또 달갑지 않은 내 나이도 떠올렸다. 예전의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 나는 몇 살이었더라...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때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미워했는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버지를 떠올리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아버지는 영업 일로 시작해 당신 사업을 꾸리기까지 열심히 일하셨다. 외향적이고 매사에 자신감 넘치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런 삶의 궤적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그때의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실망스러움과 이해하기 어려움의 중간 지점 어디쯤에 있다고 느꼈다.


반면, 내 동생은 매사에 느긋하고 여유가 넘쳤다. 낙천적인 성격에 적당히 귀염성도 있었던 녀석은 아버지와 궁합이 제법 잘 맞았다고나 할까? 아버지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틈나는 대로 아버지의 지갑을 열어 용돈을 뜯어내는 쪽은 언제나 동생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순수한 즐거움이 엿보였고, 예민했던 그때의 나는 이런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큼의 아량이 없었다.


그 무렵, 아버지를 닮지 않은, 아버지와는 다른 나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이내 아버지를 부정하고 굳이 싫은 모습들을 트집잡기에 이르렀다. 간혹 기분이 좋을 때 집에서 연주하시던 클라리넷 소리는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운전을 하는 동안 낮은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조리시는 모습도 왠지 위선적으로 보였다. 급기야는, 살짝 삐져나온 아버지의 귀털을 보면서 "윽, 귀에 털 나는 건 안 닮아서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는 만큼의 시간을 지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는 여전히 내가 좀처럼 마주한 기억이 없는 원초적인 기쁨의 감정들이 가득했지만,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직원이 열댓 명도 되지 않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전화기만 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셨다. 그렇게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작은 공장에서 사내 커플이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고, 부탁받은 주례사 대신 클라리넷 연주로 축가를 대신하려고 매일 연습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제껏 아버지가 일궈오신 삶이 조금은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를 운전해 회사로 향하는 길에 언제나처럼 기도를 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가슴이 뜨끔했다. 혹시 그때 아버지도 나처럼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 기도하셨던 것일까? 최근 한쪽 귓속이 자꾸만 간질거려 새끼손가락으로 긁적이다가 느껴진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자꾸만 헛웃음이 났다.


그랬구나. 안 닮은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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