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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15. 2023

내 눈물 모아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 녀석의 카톡 프로필에 이렇게 적혀있다. "djfms D-00"  이제 내년이면 자기도 어른이라는 뜻이겠지. 제 방 하나도 혼자 치우지 못하는 녀석이 어른을 이야기한다니 기가 막혔지만, 그냥 피식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의 스무 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술도 마실 수 있고, 담배도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고 우쭐했던 나의 철없던 그때.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머릿속을 맴도는, 당시의 내가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던 한 어린 가수의 노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것은 1995년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아들로 살아온 시간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당시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맘껏 누리는 것이었다. 내키지 않을 때는 수업을 빼먹고 노천극장에 드러누워 마냥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리포트는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해서 제출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숙제와 다를 바 하나 없었건만, 왠지 “리포트”라고 하니 하든 말든 내가 결정할 문제인 것만 같아 마냥 나태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서, 나는 “어른”의 삶에 한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으로 두 학기를 보내고 방학 때마다 집으로 날아온 성적표들은 내가 어른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나만큼이나 게으름을 피웠던 과 동기들 중 일부는 일찌감치 정신을 차린 듯 휴학계를 내고 군 입대를 택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게으른 생활을 청산할 마음이 없었고, 함께 대학생이 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느긋하게 겨울 방학을 즐겼다. 아마 담배를 처음 배운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해 겨울, 서지원이 세상을 떠났다. 나와 같은 또래였고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들이 있는 미국을 떠나 홀로 한국행을 택했던 그의 스무 살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어른의 삶인 줄 착각했던 나의 대학교 1학년 시절과는 다른 밀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철들지 않았던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유작이 되어버린 그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어떤 무게가 그를 짓눌러 세상을 등지게 했을지, 동갑내기지만 철없던 당시의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차가운 계절이 되면, 또 한해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돌이켜 보며, 크고 작은 후회와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그가 젊은 나이에 불행히도 세상을 떠난 지는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고, 그때의 철없던 나는 그가 떠나고 없는 세상의 시간만큼의 나이를 고스란히 먹어 마흔 중반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리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그가 살았을 스무 살의 시간을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가볍다.


유작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가수. 그리고, 그의 노래를 아껴 듣고 따라 부르며 천천히 늙어가고 있는 동갑내기의 나. 이제는 진짜 어른의 삶이 무엇인지, 나의 시간을 온전히 책임지는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은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오늘도 적당히 게으른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정말 모든 사람은 언젠가 어른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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