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에 떠오른 해도 결국 그날 저녁에 저문다
인사 이동과 조직 개편으로 정신없이 바쁘고 어수선한 연말을 보내고 나니 해가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연말에는 밀린 휴가도 좀 쓰고,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는데. 해가 바뀐다는 감각 자체를 느끼지 못한 채로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니 조금 서운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하루가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화나는 것은 바로 늘어난 뱃살이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편이라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나름 체형 관리가 되고 있음을 스스로 자랑으로 여겨왔는데. 일이 바쁘고 사람에게 치여 마음이 지친 날, 근육을 단련하는 대신 맥주와 튀긴 음식으로 뇌를 달랬던 게으른 선택의 결과다. 그럼에도 나는 새해맞이 다이어트 결심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나는 새해 결심에 반대한다.
내가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이유 1.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몇 가지 "성공"들이 있다.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은 것, 10kg가량의 체중 감량과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는 물 한잔 등 대단한 성취는 아니지만, 여러 번의 시도와 반복 끝에 생활의 루틴(Routine)이 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식도염으로 찾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충고를 들은 어느 날, 불어난 체중에 무릎에 무리가 느껴진 또 다른 어느 날 시작되었을 뿐, 새해 아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산술적으로도, 지켜질 결심은 1월 1일이 아닌 나머지 364일 중에 시작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내가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이유 2. 실패할 결심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새해 아침에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를 펼쳐 적어 내려간 다짐과 목표들 중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유가 무엇일지 조금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은 새해 자정을 계기로 자신이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고, 결국 무리한 목표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어제의 내가 하루 만에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무리한 목표는 실패로, 실패한 결심은 "그럼 그렇지 뭐"로 이어진다. 차라리 결심 따위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한 해의 시작이다.
내가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이유 3.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다.
이렇듯 새해 결심은 나쁘고 해로운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다.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새해 결심을 세우고, 높지 않은 확률로 성공하든 높은 확률로 실패하든 그 모든 과정을 겪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 몇 번이고 반복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어쭙잖은 실패 따위에 허비할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슬프게도, 이제 나는 어리석은 짓을 줄여야 하는 나이이다.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그날 주어진 숙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도 많은 지인들이 1월 1일 새해를 맞아 일출 명소에서 찍은 멋진 사진들을 보내 주었다. 나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강아지 하루를 쓰다듬으며 그 해를 바라 보았고, 저녁에는 동네를 걸으며 그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새해 첫날의 해도 결국 그날 저녁에 저무는 것.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말 것." 새해 첫날 이토록 담담한 마음을 지키고자 애쓰는 나는, 아마도 올 한 해를 그런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