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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Nov 10. 2023

고3 아들과 회사원 아빠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올해 고3인 아들 녀석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럭저럭 상위권이지만 그렇다고 명문대에 진학할 정도까지는 아닌 애매한 성적. 늦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는 녀석의 방문 너머로 들리는 저 목소리는 아마도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소리일 것이다. 아이들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는 가끔 전화를 걸어 고3인 손주가 딱해서 어쩌냐고 걱정이지만, 당신 아들 고3 시절을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당신 손주는 하루하루 즐겁게,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해 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때에는 태권도, 피아노 같은 예체능 위주의 학원만 다녔고, 가족들이 미국에서 지낸 4년 동안에는 그야말로 실컷 놀게 놔두었다. 물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중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진짜 "그" 학원에 다니게 되었지만, 들고 오는 성적표를 가지고 뭐라 한 적은 없었다. (보통 이런 얘기는 자녀를 서울대 보낸 부모님들이 해야 할 것 같지만, 나도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권리는 있으니까)




제법 쿨한 부모인 척했지만, 사실 내 마음 렇지 못했다.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을 뿐, 때때로 아이가 들고 오는 성적표를 보면서 들었던 실망스러운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좀 더 잘해보지 그랬느냐고 아이를 다그친 적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묻고 싶었다. "너 정말 최선을 다한 것 맞니?"라고. 좋은 부모 코스프레를 하느라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속으로 삼키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어느새 다 자라 고3이 되었다.


제법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라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의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모이면 비슷한 또래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학창 시절 늦은 밤까지 스탠드를 켜고, 때로는 흐르는 코피를 막아가며 책상 앞에 앉아 씨름했던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아니, 우리가 공부를 잘하라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런 게 없어.", "너무 부족함 없이 키운 것도 문제인가 봐. 결핍이 없어서 그런가, 뭔가를 간절히 꿈꾸고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 요즘 애들은."


그렇게 자식들을 안주삼아 술이 몇 잔 더 들어가면, 이야기의 주제는 비로소 각자의 삶으로 옮겨간다. 그래도 소싯적에는 이 나이쯤 되면 뭔가 이루어 놓은, 안정된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을거라 기대했던 소위 “명문대 출신 대기업 회사원” 아빠들의 인생 이야기는 참으로 고단하고 보잘것없기 짝이 없다. 하루 종일 위아래로 정신없이 치이다 보면 내가 오늘 하루 뭘 했는지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니 여전히 불안하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나? 아빠들은 아직까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 그리고, 비로소 지금 자식 인생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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