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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pr 20. 2020

그놈의 리셋 증후군

매일 밤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2020년 4월 20일. 지금은 오후 11시 5분.


담담히 나의 속마음을 꺼내보고 싶다.


리셋 증후군. 한 남자의 리셋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유튜브에 올라왔다.

사실 난 리셋 증후군이란 말을 몰랐다. 학문적으로 연구된 용어인지는 모르겠다.

https://youtu.be/C1SliaN2Jjg


내가 평소에 애청하는 분의 유튜브인데, 뭔가 나의 지금 상황이 이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물론 그분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지난 아니 작년 말 이후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정말이지 허접한 나의 생애 처녀작을 내놓고 나름 ISBN(Internationa Standard Book Number) 있는 책을 낸 작가라는 오만에 빠져있던 건 아닐까? 사실 오만이라도 부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나의 지인은 농담 반 진담 반 "박 작가"라고 꾸준히 불러준다. 아무래도 그 분과 나의 인생 목적이 같아서겠지. 그분에게 있어서 뭐라도 하나 책을 낸 내가 달리 보였을 거다. 


다시 리셋 증후군으로 돌아가 보자.


난 올해 마흔. 아직 결혼도 못(안)했고, 내 명의의 집도 없으며 남들이 인정할 만한 직업도 없다. 근근이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는 상황. 그렇다고 미래를 약속하고 같이 만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끝에 닿을 즈음엔 잠들기 위해 누웠던 이불 끝자락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숨고 싶다.


내 글이 아직 정체성도 없고 무엇보다 흥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 그러면 언제가 좋을까?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잘할 수 있을까?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대학시절, 난 친구들과 마찰이 있었고 1학년 때부터 군대 다녀올 때까지 지지고 볶던 무리에서 탈출했다. 나 스스로 리셋을 했다. 갈등을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망친 것뿐이다.


누군가 그랬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그렇게 리셋 증후군은 계속되었다. 잘 지내던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해결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싸움이 트라우마가 되었던 걸까?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타입이었다.


 

Photo by Osman Rana on Unsplash


얼마 전에도 가끔씩 연락하면서 나보고 시간 안내는 사람이라고 하는 지인에 심한 배신감을 느껴 카톡을 차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분의 문제점을 툭 털어놓고 해결하면 되지 않았을까 되뇌어본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그쪽에 있었고 난 그냥 나의 길을 가면 될 일이었겠지만.


아무튼 리셋 증후군은 갈등으로부터 회피를 선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껏 나의 인생은 이뤄놓은 것 없는 후회와 아쉬움의 잔재로 뒤덮여 있는 건 아닐까.


리셋 증후군은 게임의 리셋이 현실의 세계에도 적용되길 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상상의 산물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 하고 갈등이 있으면 해소를 해야 한다. 실존주의의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내가 리셋 증후군의 희생양이었음을 인지한 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 한다는 삶에 진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당연한 일이지만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제는 만들지 말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믿는다. 


연인과 갈등이 있으면 입과 귀를 닫고 침묵과 회피로 일관된 행동을 취해왔던 내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의 나, 지금의 내 모습이다.


리셋 증후군은 분명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경험상 삶은 피한다고 되돌아오지 않고 피한다고 다시 만나지 않는 법이 없다. 덮어두었던 문제는 꼭 같은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 


다시 글을 써본다. 리셋 증후군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게으름을 가장한 나약함의 모습에 더 가깝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일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그런 과정을 피하지 않는 것. 


내일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어리석은 희망은 갖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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