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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y 27. 2021

불안은 대응의 영역이다

불안에 대한 재정의


사회 초년 시절, 곧바로 투입된 업무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업무 절차, 보고서 작성, 문제 해결, 보고 체계 등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은 다시금 이등병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참 많이도 방황했다. 날 다그치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미워도 해보고 들볶아 대는 상사를 안주 삼아 동기들과 많은 술자리도 했다. 반항성 연차를 사용해 일탈을 즐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다음날이 되면 난 사무실 책상에 앉아야 했고 골치였던 문제도 그대로였다. 퇴사 생각이 간절해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고 업무에 익숙해졌을 때 처음 느낀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었다. 타 부서 누군가로부터 질의가 들어오면 지난 경험과 자료를 통해 쉽게 답을 해줬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대전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차 속도만큼이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순간 깨달았다. 나의 모든 불안은 '무지'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분명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불안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막연한 미래와 준비되어 있지 않는 듯 보이는 나 자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불안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휩싸인다. 우리는 왜 불안을 느끼는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바로 '몰라서'.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고 두려우면 파괴로 해결한다고 한다. 파괴만이 답일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나를 불안으로 이끄는 이 존재를 파괴하는 유일한 방법은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상대 약점이 무엇인지 알면 승부는 의외로 흥미진진한 게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분명 모두 쉬운 일을 하고많은 월급을 받고 싶을 테지. 단순한 업무는 정말 편하다. 문제는 다른 형태의 업무를 맞닥뜨리면 당황하고 피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더 어려운 업무를 해내고 나면 나머지 일들은 쉬워진다. 10년 조금 넘게 직장에서 존버 한 결과 터득한 삶의 지혜다. 


내 나이 마흔하나. 돈벌이 못한 코 훌쩍 시기를 제외하면 실제로 제대로 된 밥값을 한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텐데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업무 난이도가 올라갔다. 그렇다고 다시 단순 업무만 하다 보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은 팀장처럼 결재만 하고 나름(?) 편하게 일하고 싶은 망상을 하면서 하루하루 밭에 이끌려가는 소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상이 현실과 차이가 나면 불안이 찾아온다. 불편한 놈이다.


하루하루 승리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다고 거대한 목표를 단번에 이루자는 게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은 승리를 하는 일상을 이어가자는 말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해내는 거다.

나는 과거에 잘 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으며,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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