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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y 28. 2021

변화, 그리고잘 버팀

하루하루 잘 버티자


사십 대가 되어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지난 시간 속 나와 다른 변화를 주고 싶어 이직을 했다. 주거 지역 선호로 근처 공공기관 입사가 목표였다. 그러나 한 직장을 10년간 다닌 내게 이직의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입사원서를 넣었다. 코로나 19가 창궐하던 작년 초. 불안, 초조한 맘으로 거실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내게 들어온 자리. 공무원 임기직 자리였다. 임용 기간은 1년. 놀면 뭐하냐 싶어 1년이라도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원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임기제 공무원 자리는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되면 좋고 아니면.. 그때 생각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원서를 직접 제출하러 가는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가방에 원서를 고이 모시고 접수 담당자를 만났다. 잠깐 대화를 했고 뭔가 기분이 좋았다. 왠지 될 거 같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그래도 원서 작성하느라 머리를 짜내 오히려 속이 시원하였다. 일단 최선을 다했다. 난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면 그 뒤 결과에 대해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조급하고 초조해한다고 되는 일은 없었다. 여느 때처럼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에 책을 읽고 나왔다. 문자로 스마트폰이 흔들렸고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몇 주 지나고 면접을 봤다. 면접 순서는 1번.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면접 장소에 대기하고 있었고 기가 죽었다. 모인 사람 모두 예비 합격자처럼 보였다. 면접 장소에 들어서고 다소 심장이 콩닥거렸다. 긴장을 낮추고 최대한 성심 성의껏 답변을 했다. 제대로 답을 했나 싶었다. 속상했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일상을 보냈다. 또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 몇 주가 지났고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일반 사기업과 다른 체계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장단 장단. 좋은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같이 근무하게 된 동료들이 너무 좋았다. 같이 이야기 나누고 서로 경계를 풀고 나름 사이좋게 지냈다. 1년이 지나 조직원이 바뀌고 좋으신 분들과 인연을 이어갔고 별 이견없이 계약기간이 또다시 1년 연장되었다.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점은 불안의 요소였다. 대신 임기제 동기를 조직 내에서 인정해주고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팀원들에 감사했다.


그러나 조직의 방향과 쉽게 변하지 않는 체제는 계속 가슴에 남아 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될 대면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몇 군데 이직 원서를 넣었다. 우연찮게 계약 기간이 조금 길고 직급과 연봉 상향이 가능한 타 부처에 합격했다. 세 번째 직장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또 다른 형태의 임기제 공무원이다. 신분 개선은 현재 단계에서 여기가 최선이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직 생활은 잘했나 보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줬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엔 미안함이 남았다. 크게 마음 두지 않기로 생각하고 절차에 임했다. 계속 과거에 마음을 두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새로 임용된 곳에서 1주일을 보냈다. 내 전임자 히스토리와 조직 분위기에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직이 변화하길 바라는 건 시간 감정 소모적인 일이라 어떻게든 빨리 업무를 익혀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이가 반기지 않지만 그래도 옆에서 일을 조금씩 알려주며 도움 주는 분들이 계셔서 하루하루 보냈다.


어언 2년 차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임기제 공무원은 기간의 정함이 있을 뿐, 신분과 복지가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럼에도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달고 다녀야 한다. 처음으로 계약직 인생을 살고 있다. 여자 친구는 직장 생활 팔 할이 계약직이라 당연한 거라 말하곤 한다. 위로가 될 때도 있고 한 켠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대한민국 40대는 취업시장에서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본다. 사회를 비판해보지만 그렇다고 속이 후련해지지 않는다. 이제 갓 마흔인데 벌써 오십을 걱정한다. 항상 그래 왔다. 10대에는 20대 생각, 20대에는 30대 생각, 30대에는 40대 걱정을 해왔다. 사실 걱정한다고 드라마틱하게 이뤄진 건 없다. 그저 잘 버텨왔네 하며 스스로 위안 삼는다.


그냥 버팀과 잘 버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전 직장에서 그냥 있었더라면 난 지금 이곳에 대한 섣부른 아쉬움이 해결되었을까. 어느 곳에나 장단이 있다고 이성적으로 이해해보지만 감정의 영역은 그렇지 않다. 그저 마지막 날에 안도감과 설렘만이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계획된 일을 헤쳐나가기 위한 깊은 집중이 답이 되지 않을까?


"Think Hard! 몰입"의 저자 황농문 교수는 그의 저서 머리말에 몰입을 통해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과 삶의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7년 동안의 몰입 체험은 '의도적인 노력으로 어떤 일에 몰입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중략)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과 삶의 행복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까지 찾게 되었다."


잘 버팀은 몰입에 있다고 생각한다. 몰입은 중요한 문제고 집중 거리를 찾아 헤매자. 아직 변화는 실험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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