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새 직장에 들어온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마 맘 놓고 편하게 지낼 사람이 없어서 그런 듯 하다. 일은 고되다.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일이 주는 슬픔에 젖어있다가도 노동으로 주어지는 물질적 풍요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한다.
“우리는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물직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중
노동의 종착지는 죽음이고 할 일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죽기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때론 몸이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은 참 아쉬운 대목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 몸을 혹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오늘도 직장에 출근한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을 즈음에 망가진 몸을 추스리기 위해 모아 놓은 돈을 쓴다.
몸이 거부하는 시간에도 업무를 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 일에도 품격이 있다면 모를까 그나마 커피는 최소한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분위기를 내는데 중요하다. 그렇게 마셔댄 커피가 이제 루틴처럼 꼬박꼬박 들이부었더니 어느 순간 몸과 머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집중력이 흐려지고 속은 더부룩 해지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새 직장 업무에 긴장하고 적응하기 위해 집중력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동생이 추천해준 테아닌을 먹기로 했다. 하루에 두 번. 200mg 짜리 두 알을 아침, 저녁에 나눠서 먹었다. 테아닌의 주요 효능은 집중력 강화, 스트레스 해소라고 한다. 딱 내가 필요한 것들이다.
테아닌을 복용하면 피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커피다. 커피안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길항작용을 하여 테아닌이 주는 효능을 상쇄시켜 버린단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3일이 지났다. 3일이 지난 어제 하루 종일 잠이 깨질 않고 두통이 심해졌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부작용에 두통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두통인 무엇 때문일까?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생기는 건가? 테아닌 복용일 너무 많이한 이유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몸이 너무 졸리고 식은땀도 났다. 두통은 지속됐다.
결국 테아닌을 하루에 한 알을 먹기로 했고 어제는 오후 9시 부터 내리 잤다. 그리고 아침 6시에 깼다. 다소 몸이 개운해졌다. 아무래도 커피를 줄이면 머리가 멍해지는 감이 있는데 그것과 더불어 테아닌이 주는 스트레스 완화 효능으로 몸이 그리 반응했던 듯 하다.
현대 사회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살아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은 '커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의 문명을 만들기 위해 많은 혁명들이 있었고 원시부족 시절과는 다르게 많은 노동을 해왔다. 배가 고프면 열매를 따먹고 사냥을 했던 시기를 벗어나 의지와 상관없이 노동을 해야했던 문명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억지로 각성하게 해주는 커피는 훌륭한 채찍이었을거다.
커피를 계속 안 마실건가? 사실 그건 아니다. 커피를 안 마시니 처음 3일이 어려웠지 속은 좀 편안해졌고 제법 졸음도 사라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며 공부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집중력이 더 좋았던거 같다.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입했던 순간 행복을 느낀 적도 많다.
요즘 현대는 집중력이 고갈된 사회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에 1시간 집중하기도 힘들다. 갈수록 신문의 문장도 짧아지고 살은 없고 뼈대만 있는 시가 유행하고 있다.
문장이 주는 풍요로움과 집중을 통한 행복을 느끼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우울하다면 한 번 쯤은 몰입의 대상을 찾고 몰입이 주는 행복을 느껴보고자 노력해봄이 어떨가 싶다. 집중하기 힘든 시대이다 보니 모두 겉핥기 지식만 도처에 널려있다. 이야기를 나누어도 깊은 대화가 없다.
커피 며칠 끊은거로 이런 잔소리를 해대니 나도 이제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