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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y 24. 2021

매일이 1일차였으면

새로움을 대하는 정신에 대하여

오늘 새 직장에 출근한다. 9시 이후에 오면 된다고 하여 시간적 여유를 갖고 옷을 입는다. 이런. 어제 많이 먹었나 보다. 셔츠와 바지가 맨살에 살짝 붙는다. 분명 건강식인데 양이 많았나 보다. 그리고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보니 눈도 얼굴도 퉁퉁 부었다. 2주 정도 쉬는 동안 나름 운동을 했지만 어찌 인생이 노력 대비 성과가 극적인 적 있더냐. 아침을 굶기로 했다. 간헐적 단식이라고 하지.

10kg만 빼면 좋겠다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낯설다. 인간은 모르면 두려워하고 두려움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겨낸다. 혹자는 정면돌파를 하기도 하고 때론 파괴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이 어려운 건 팔 할이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업무를 이해하면 나머지는 쉽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귀찮아진다.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올챙이 시절은 있으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두려움이다. 그건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아님말고 정신이 인간관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아님말고 정신이 각인되면 자유도가 올라간다. 인간은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존재 아니던가. 그렇게 원하는 자유는 기대를 내려놓으면 당연히 따라온다. 첫 대면 인사를 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ㅇㅇ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단 세(3)문장이면 된다. 앞으로 차차 알아가는 거다.


첫날은 원래 일찍 가는 거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첫날 긴장을 풀지 않으면 다음날 견디기 어렵다. 꽉 끼이는 옷을 집어던지고 짧게 움직여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거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 많이 움직여보자.


버피 100개를 하기로 했다. 아파트 피트니스센터(헬스장이라고 한다)에 가서 쇠질을 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다. 작은 운동, 작은 승리를 맛보고 싶다. 8초에 1개씩 시작한다.


결국 100개 성공, 내일 목표는 내일 생각하자

20개. 살짝 숫자를 봤다. 한 40개는 한 거 같은데. 동작은 4개인데 카운트는 하나라서 그런가.

50개. 숫자를 보지 않았는데 숨이 가빠져와 결구 TV 스크린을 봤다. 이제 반 왔다. 뭔가 여기서 끝내기 싫다.

60개. 0개를 기준으로 10개 더 한 거다. 그만 포기할까 생각해 본다. 마초스러운 음악에 맞춰 괜히 SWAG 제스처를 취해보았다.

70개. 내 나이 70살에 뭐하고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래야 시간이 금방 갈 거 같다.

80개. 너무 힘들다. 8초가 4초 같다. 영상 제작자가 제대로 시간 카운트를 하고 있는지 살짝 의심이 든다.

90개. 깔딱 고개. 눈이 번쩍 뜨인다. 10개만 미친 듯이 하면 되는구나.

100개. 제일 정확한 자세로 마무리. 물 한 잔 마시는데 심장이 터질 듯하고 손이 벌벌 떨린다. 티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샤워를 한다. 땀에 물든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는다. 항상 마지막은 찬물 샤워다. '19년 첫 직장을 그만둔 이후, 뭔가 다른 아침 루틴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중 귀찮음, 고통, 상쾌함이 공존해있는 찬물 샤워를 꾸준히 하고 있다. 찬물이 머리부터 온몸을 적시기 시작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몇 번 허우적대고 나면 몸은 금방 적응한다. 겨울에는 문밖에 나오면 덜덜 떨곤 했지만 지금 같은 날씨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뭔가 발걸음도 가볍다.


작심삼일은 사실 내겐 너무 길다. 새로운 습관을 3일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 3일만 버티면 된다 하지만 난 매일이 1일차면 좋겠다. 하루하루 매일 새로 태어난 듯 기적과 같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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