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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Nov 20. 2016

#08 <불안>

'불안', 너는 내 운명이냐

01 | 불안은 돈이 된다

 

먼 옛날, 먼 바다를 건너 온갖 보물들을 싣고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성공을 기원하며 투자를 했다. 누구나 만선을 기대하지 난파되어 빈손을 돌아오는 상황을 상상한다. 만약 배가 뒤집어져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럴 경우를 대비해 보험을 들었다. 불안을 보험과 맞바꾼다. 미래 자신이 아프지만 병원에 갈 비용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다. 자동차가 사고 났을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한다. 보험뿐만 아니다. 요즘엔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재회 사이트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 홍보는 남들과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며 불안을 교묘히 이용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유행에 뒤쳐지기 싫은 불안을 틈타 마케팅 공격이 들어온다. 홈쇼핑 아나운서는 마감 1분 전이라며 물량이 얼마 없으니 결재를 서두르라고 한다. 남들보다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클수록 불안도 커진다. 그런 불안을 해결해주는 서비스들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하지만, 내 지갑은 항상 텅텅 빈다. 가난엔 이자가 붙는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내 가난은 불안을 잘 다스리지 못해 생긴 건 아닌가 싶다.



02 | 죽음과 불안의 관계

 

10대 시절, 팔 할이 '수능 준비'였고, 20대는 '취업 스펙 쌓기'였다. 30대가 되고 나니 신경 쓸 일도, 책임질 일도 많아 목적 없이 고민과 불안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종이에 답안지를 적어내어 해결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주는 불안의 기운은 슬금슬금 내 양쪽으로 오로라 마냥 피어난다. 서른이 되어도 '불안'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항상 친구처럼 따라다녔다.

 

불안에 관한 흥미로운 인문학적 해석을 접했다. 먼 옛날 우리 선조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수렵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매사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은 선조들만 살아남았다. 방울뱀이 이쁘다고 쓰담하려 했던 낙천적인 성격의 선조님은 입에 거품을 물고 하늘로 먼저 올라가셨고, 신기함보다 경계를 했던 이웃분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는 방울뱀을 건들지 않아 살아남았고 자식들에게도 항상 조심을 강조했다. 그분의 왠지 모를 '불안'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없는 넓은 주차장 한가운데 주차하는 것은 부담이고, 넓은 공원 한 복판에 대자로 누워 자는 것보다 작은 나무라도 그늘 밑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선조가 죽음 대신 불안을 선택했듯이 그 둘의 관계는 한 끝 차이다. 마치 시작과 끝. 만남과 헤어짐. 달리 보며 둘은 꼭 닮아있다.

 

우리는 매일 밤 죽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살아난다. 만남 자체는 설레지만 그 끝은 가슴 시린 이별이다. 삶 자체도 만남과 헤어짐같이 죽음과 다르지 않다. 살아갈수록 죽음과 가까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죽음으로 가는 여정 같기도 하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의 미완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무화과를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된 것과 원해서 태어나지 않은 것. 인간의 삶은 존재 자체가 실수이다. 그래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어리숙할 수밖에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편한데, 그렇질 못하니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죽음과 불안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와도 같다. 죽음이 주는 월급이나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지면 불안은 '너님 해고' 된다. 




03 | 비교는 불안을 키우는 일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많은 현대인이 느끼고 있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원인을 철학, 역사, 그리고 문화를 통해 진단한다. 옛날엔 엄격한 계급사회가 존재했었고, 각 계급 사이 이동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과 지위의 차이에서 오는 부러움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며, 계급사회가 붕괴되고 누구나 노력만 하면, 많은 부와 그에 따른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항상 남과 비교를 하게 되고, 내가 가진 한 개의 사과보다 남이 가진 바나나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면서부터, 남과 비교하면서부터 '불안'이 싹튼다고 했다. 그래서 '비교는 불안의 씨앗이다'라고 하나보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면서 불안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비교를 멈출 수 없는 한 불안은 숙명이다.


04 | 잘못된 '질문'에 불안이 '답'한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수많은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철학은 답이 없지만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 또한 불안을 느낄 때면 해답을 얻기 위해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해댔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왜 나는 남들처럼 못하지?'.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질문을 바꾸어 본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재미날까?'


그 이후로, 그나마 남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내 삶에 대한 애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질문 속에 답이 있었다.



05 | 다시 못 올 순간을 즐기는 방법


지금은 유명하고 선후배로부터 존경까지 받고 있는 방송인 유재석 님. 신인시절 하는 일마다 다들 반응도 시원찮고, 어쩌다 좋은 기회가 들어와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밤새 걱정하느라 정작 본 방송에서 실수를 연발했다고 한다. 그러다 고민만 하고 정작 연습은 뒷전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그 이후로 고민은 제쳐두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혼신을 다해 연습에 연습, 그렇게 노력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 작인 무한도전에서도 종종 삶에 대한 애착과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무한도전 시절 동료 개그맨 정형돈 씨와의 대화.


'형, 형은 무한도전하면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고민한 적 없었어?'


'형돈아, 난 그런 고민한 적 없고, 오늘 할 일만 생각해. 어떻게 하면 오늘 방송을 잘할 수 있을까? 동료들과 어떻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한다고.'

 

지금은 종영했지만 10여 년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의 순간만을 선사했던 무한도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 당장 큰일이 닥치는 것도 아닌데, 우린 너무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실은 나도 항상 고민하고 불안감에 잠에서 벌떡 깨기도 하고 축 처진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나뿐이겠는가. 한 친구는 밤에 잠들 때면 마치 우주 한 공간에 쓸쓸히 홀로 나와있는 듯한 공포를 느끼기까지 한다고.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젊은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매일 밤 베개에 얼굴을 파묻히고 눈물을 쏟으며 살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실수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상대적으로 엄격한 사회가 낳은 불량품은 아닐지.



06 |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의 운동을 한다. '달리기'와 '수영'.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날마다 달리다 보면 그 깊은 곳에는 좀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라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자존감이 낮으면 불안이 찾아온다고 한다. 본인이 설정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자존감이 적절한 수위가 유지되면 불안이 내 마음의 문을 허락 없이 두드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계속 얘기하지만 나도 불안의 노예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회사라는 무대를 내려오면 밀려오는 피로감에 곧바로 침대로 누워 있고 싶다. 몸은 점점 더 침대와 밀착이 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룰 때면, 사방의 벽이 조여 오고 천장이 내려앉는 듯 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나날이 며칠 지속되면 끊는 행위가 필요하다. 밖에 나가 무작정 달린다. 바람을 느끼며, 다리의 고통이 사라지는 구간이 오면 땀에 온 몸이 흠뻑 젖고 마치 샤워하듯 생각의 때가 벗겨진다. 불안하고 고민될수록 생각의 끈을 놓아야 한다.



누군가 재미있는 말을 던져주었다. '고민한다고 고민이 없어지면, 고민이 없겠네.' 



불안은 그냥 '운명'이다.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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