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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Dec 15. 2017

#19 <딴짓>

온 힘을 다해 잘 놀아야 해

01 | 늦잠으로 시작한 휴일의 아침


불금이었다. 할 것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봐야 집에서 노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나름 나만의 불금을 보내는 방식이 있다. 맑은 정신으로 토요일 아침 10시에는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마시고 보고 먹는 것. 그런데 무리를 했다. 일어나 보니 오전 9시 40분. 내 소중한 주말, 휴식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 시간이 아깝다. 비록 커피숍에는 원하는 시간에 못 갔지만 몸이라도 움직일 생각에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밖에 나갔다. 한참을 뛰어 도착한 커피숍. 그리고 내게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커피 한 잔. 그리고 때마침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 주위 풍경이 밝아졌다. 행복했다. 오늘 하루 내가 주인공인 듯싶었다.

 

02 | '딴짓'을 하는 이유


'해석학적 순환'을 아는가? 내가 언젠가는 꼭 한번 뵙고 싶은 김정운 작가가 한 TV의 프로그램 <인생이 재미없는 이 시대의 남자들, SBS>에서 '아주 쉽게' 설명해주신 심리학 용어이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 노트 한 구석에 적어 놓았다. 


심리학 용어 중에 "해석학적 순환"이란 게 있단다.


우연적인 현상을 필연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필연의 과정으로 우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의미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

어렵다. 쉽게 설명해보자.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도 우연이다. 그런데 성공을 우연의 과정으로 정의해버리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누가 자신의 살과 뼈를 깎아내며 성공 그 하나만을 위해 질서 있고 절제된 생활을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더라'라는 필연의 과정으로 우연적인 현상(성공)으로 해석하고, 반대로 '성공하기 위해선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는 긍정적인 의미 또는 사고 체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연과 필연을 해석하고 순환시키는 것. 이것이 '해석학적 순환'이다.

이렇게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는 체계를 바탕으로 보통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학적 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걸 가능토록 하는 것이 바로 '축제와 휴식'이다.

인생을 하루하루 쑥쑥 커가는 대나무라고 해보자.

대나무는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버티고 높이 오른다. 그 이유는 '꺾인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란 인생에 있어서 변화를 말한다. 이 변화가 바로 '쉼'이다. 다시 말하면 잘 쉬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움에 설렌다. 1월 1일, 새로운 직장, 새로운 장소, 새로운 물건 등. 이러한 시작은 끝을 기반으로 한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수명을 다한 세포가 죽어야, 새로운 세포가 생겨 나듯 말이다.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는 '휴식'이 있어야 결승골에 완주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달 이상의 휴식조차도 갖기 어려운 쳇바퀴와도 같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축제와 휴식을 통해 인생의 마디를 만들어낼까? 정답은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작은 리츄얼(Ritual, 의식)을 만들면 된다.


리츄얼(Ritual)은 의식이다.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와 같은 의식을 상상하지 말라.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반복적이고 작은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 한잔 즐기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은 본인의 리츄얼이 된다.


'딴짓'도 리츄얼에 해당된다. 딴짓을 하는 중에 잠시나마 고개를 들어 숨을 쉴 수 있는 숨통이 트인다. 자기만의 소소한 행복들을 만들고 지켜나가면 힘든 일상을 버틸 수 있고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토요일 오전 10시, 고요한 공간, 향이 좋은 커피, 시원한 바깥바람, 헐떡이는 숨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깨끗해진 방, 점심 식사 전 꿀맛 같은 20분의 낮잠. 나의 '딴짓' 리스트이자 휴식이자 작은 의식들이다.


이렇게 작은 행복의 마디를 유지하면서 숨을 쉬는 것.


언제 해결될지 모를 고민으로 또 힘겨워할지언정 그래도 살아내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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