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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y 06. 2019

에필로그

'마침' 후 또 다른 여정의 준비

01| 이대로 보낼 순 없지만 그 안에 행복은 있었어


한국 나이 39살, 만 나이로 37살. 이제 곧 생일이 지나면 만 38살. 

29살 과거의 나와 대화해 본다. 


'상상이 안돼요'. 29살의 그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스윽 올리곤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39살이면.. 난 이미 어느 주점에 앉아서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거 같아요'

'그래? 가끔 그러곤 싶고 불안하기도 하곤 하는데.. 한탄까지는 아니야'

39살의 내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29살의 그는 절규하듯 후회가 가득한 말투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모습은 마치 피터팬이 어른이 되지 않겠다며 두 손과 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우기는 모습과 같았다. 


'너도 언젠간... 모르겠다. 세상은 비록 혼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잖아? 그리고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지 않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좋아하는 음악 듣고, 밥을 먹고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얼마나 좋아.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아. 근데 너는 어때? 출근 시간 30분 전까지 자고,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늦게 자고 항상 피곤에 불평만 늘어놓고 있잖아.'


29살의 그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듯 잽싸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떠났다.


'그래, 지금은 잘 모를 거야. 39살이 된 나도 잘 모르는데'


소중한 것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왜 과거는 절대적으로 아름다운지. 비록 그 시절엔 앞도 안 보이고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찬 빈 벽으로 둘러싸인 듯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준 그 시절 나에게 참 감사하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주어서 고맙고 대견스럽다. 두 팔 벌려 크게 안아주고 괜찮을 거라고 더 좋을 날이 분명 올 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달래주고 싶다.



02 | 열 땐 열고 닫을 땐 닫고


30대에 만난 소중한 인연, J형 이야기다. 내가 퇴사를 하고 그 주 토요일, 연락이 왔다. 내 퇴사 사실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그와 나는 같은 해 같은 날 입사 동기다. 회사에서 갑자기 전화기를 내던지던 날, 이렇게 여기서 화내지 않으면 집에 가서 아기와 아내에게 화풀이를 할 거 같다던 그였다. 기타도 잘 쳤다. 기타로 민요 뽑아내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음식도 곧잘 만들었다. 형수가 집을 비우던 날 식사에 초대해 냉면 사발에 스파게티를 내왔다. 넘치기 일보 직전인 와인은 덤이었다. 주변 동료와 붙임성도 좋았다. 연이은 동기들의 퇴사로 총무에서 회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사하고 새로운 사업을 하더니 홀연히 불가리아로 떠났다. 불가리아. 유산균 음료 만드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면 가장 빠른 행이 프랑스 파리 드골 공항에서 1박을 하고 가야 하는 29시간 이상 걸리는 먼 나라다. 그곳으로 형수와 딸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지금은 한국식으로 닭을 튀기고 있고, 이리저리 론칭 준비를 하고 있단다. 전업으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다 하는데 일이 불규칙해 마음만 먹고 있고 언젠간 꼭 하겠다고 한다. 본인의 나이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떠나 계속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서는 그에게 물었다.


'형은 새롭게 도전할 때 두렵지 않아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답했다.

'뭐 항상 두렵지. 근데 두렵다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다 잘 되겠지 생각하는 거지. 뭐  안될 수도 있지만. 주변 시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 분명 주위 시선과 말들은 열 땐 열어 들어야 하지만 때론 닫을 때는 확실히 닫아야지. 그리고 내 성격에 안정적인 삶은 너무 재미가 없어. 허허'


난 그동안 너무 주변 시선과 말들에 많은 의미를 두며 살아왔다. 다 때가 있는 건데 남들보다 늦은 때를 한탄하며 불안해했다. 아직 30대는 시작도 안 했는데, 세상이 끝난처럼 인생 다 산 노인처럼 그런 말을 내뱉으며 살아왔다. 솔직히 고백한다. 그랬다. 그런 말을 하면 멋있어 보일 줄 알았다. 꽃이 피고 지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나 자신과 더 멀어지고 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과정이 때론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성장한다. 성장한 나를 보면 대견하다.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고 싶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항상 의심하고 사고할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 히지 않을 것. 그리고 항상 깨어있는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남들의 소식과 그들의 이야기에 항상 의지하지 말고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이제 곧 마흔인데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과 방황을 마치고 이젠 나만의 진실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그럼 <국가부도의 날>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부도는 없겠지.


전화를 끊으면서 그가 생각 있으면 건너오라고 했다. 불가리아에서 치킨 업계의 코리아 신화가 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03 | 거 별거 아녀,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아


20대 보다 더 성숙해진 대가로 내가 치러야 할 고민의 무게가 참으로 버거웠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다. 서른 살의 어른도 위로는 필요하다.

누군가 고민을 토로할 때 위로의 말로 흔히 '힘내'라고 한다. 참으로 대책 없는 말이다. 힘이 없는데 힘을 내라는 건 아픈 상처를 쑤시면서 정말 아픈지 확인하는 행동과 같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큰 위로는 안된다. 


30대 읽었던 에세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 '힘 빼기의 기술(작가 김하나 님)'에서 '만다꼬'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나온다. 듣기 편하게 해석해보면 '뭐 하려고 그렇게' 정도로 되겠다. 어찌 보면 애써 아등바등 문제 글 해결하려 애쓰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만다꼬'는 분명 허무함을 선사한다. 특히 심지가 굳기 전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러나 그 '만다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때론 문제는 잠시 벗어나 있을 때 명확히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한 차례 글을 휘갈겨 쓰고는 몇 시간, 몇 날을 잠시 방치해 두지 않는가. 힘을 빼야 삶의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 


충청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충청도 특유의 여유스러움이 묻어나는 말이다. 


'거 별거 아녀, 잘 될 거여, 너무 걱정하지 말어'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대부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대책 없는 허무한 긍정적인 언어가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노력이 필요한 문제에 더 집착을 한다.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말이다. 인생의 성공 여부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굳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을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않나. 내맡김에 익숙해져야 한다. 


퇴사하는 날, 비가 심하게 왔다. 생각은 한 끗 차이다. 가지 말라고, 아쉽다는 의미인지, 가는 날까지 양말을 적시려는 건지. 퇴사를 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이메일과 전화,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항상 일치하지 않음을 알았다. 진심 어린 말을 건넨 이도 있었고, 어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나 확인 차 연락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난 다행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그래서 고마웠다. 내가 진심으로 대한 사람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그 인연들로 인해 나는 힘을 내왔고,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 난 나이테를 한 번 더 굵게 칠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것이다. 너무 고민 하지 마시라. 흰머리만 늘어난다. 나이 먹는 게 두려워질 때면 충청도 발음을 굴려 중얼거려 보자. 


'뭐 거 별거 아녀~~ 잘 될겨'


40대에는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하고 평온한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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