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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pr 14. 2019

#29 <완성>

지금 있는 그 자체로 '완성'

01| 미완성이 된 가방을 보고


벌써 3년 전이네. 서류가방은 거추장스럽고, 가볍고 캐주얼한 그렇다고 비즈니스와는 멀지 않은 가방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원래 영화배우들이 들고 다니는 밝은 갈색 가죽의 것을 사고 싶었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 놈을 발견하고 나선 색깔이나 기능이 너무 맘에 들었다. 몇 날 며칠을 쇼핑몰을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며 장바구니에 옮겨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다.

'이걸 산다고 내가 행복할까?


'백팩이 있으므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의 삶의 방향에 위배되는 건 아닐까?'


'가격도 저렴하던데..'

'어차피 명품 사는 것보단 기능 위주로 사는 게 덜 속물스럽진 않을까?'


여러 생각 끝에 그냥 충동적으로 질렀다. 물건이 오는 날 너무 행복했다. 이리 비춰보고 저리 비춰봐도 멋있었다. 다소 기능적인 흠이 있었지만 만족하며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퍼 하나를 올려도 가방이 잠기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한쪽이 살아남아 한쪽 방향으로만 넘기면 잘 잠겼다. 지퍼가 고장 났지만 하나는 살아있다. 그래도 쓸 만하다.

 
괜히 신경이 쓰였다. 잠기지 않는 가방이라.. 가방의 완성에 있어 흠이 있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미완성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방을 들고 외출을 하곤 했다. 그러다 다시 한번 스윽 쳐다보고.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걸까?



02| 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나서 사는 거


몇 해전 종영한 드라마 '나쁜 녀석들(악의 도시)'의 깡패스러운 형사 '장성철(양익준 님)'을 보고 '우제문 검사(박중훈 님)'은 이런 말을 한다. 


'쟤는 태어나서 그냥 사는 놈 같아'. 


이 드라마 재밌다. 꼭 봐야 한다.

 
누군가에겐 별 시답지 않은 대사일 테지. 그런데 나에게 주는 울림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모두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다음이 없는데 뭐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때론 이 과정이, 행복해야 할 완성의 길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곤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보다 남을 위한 삶에 치중한 나머지 진정한 인생의 완성의 의미를 놓치곤 한다. 사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렇게까지 남을 해치며 완성을 이루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바엔 차라리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03| 나에게 있어 완성이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한때 이런 사유로 바닥을 기어가며 속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는데, 뒤에서 밀고, 앞에서 목줄을 잡고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이루고 싶은 맘이 없었다. 대충 돈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 행복이란 게 무엇일까? 그 행복에 나는 포함되어 있을까? 그러려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좀비와도 같이 아무것도 잘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포기해버릴까? 아니야 그럴 바엔 일단 한번 가보자. 왜 그렇게 사람들이 힘들어하며 산을 오르는 것일까? 매일 아침 달콤한 몇 분의 잠을 포기하면서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일까? 퇴근해서 온몸과 정신이 지쳐 있는데 학원을 가며, 운동을 하는 것일까? 분명 그 안에 내가 아직 못 느끼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꿈도 비단 나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그렇게 바삐 움직이고 하루 십분 조차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을 한다.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오히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행복한 건 아닐까? 비록 오늘의 나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감사해하고 내 이름에 대한 부끄러운 짓은 멀리하고 있지 않은가. 완벽한 것이 완성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 본연의 기능은 하고 있으니 이 자체로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순수한 나'인 것 같다.


다시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때의 설렘을 다시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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