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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ul 01. 2019

들리는 글 쓰기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저

최초의 전화, '여보세요', 그리고 그리움


1897년 조선. 흥선대원군 집권 말기. 개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다. 고종은 덕수궁에서 최초로 사람도 동물도 아닌 차가운 쇠뭉치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시요'. 

다른 한 손에 잡은 깔때기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실제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성전기회사의 직원이었다).

'Hello'. 

그 말 뜻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고종과 당상관 2품 이하 신하들은 기괴하고 이상한 물체에서 나오는 사람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 개화 정책의 핵심 기구인 '통리기무아문'에서 신문물에 대한 기록, 사서 편찬을 담당했던 정 7품의 하급관리 '김부석'은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그 감동을 <양물촉화고종신기전>에 고스란히 남겼다. 민 씨 일가와 깊은 인연이 있던 미국의 선교사 '브루스 엘런'은 GE의 에디슨과도 막역한 사이였으며 조선 최초의 조미 합작회사 '한성전기회사'를 탄생시켰고 통신 선로 설치부터 전기 보급까지 막대한 독점권을 행사했다. 그는 평소 큰 파이프 담배를 물고 다녔으며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으로 여러 사람들과 두루 잘 지냈다. 그가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 신문물과 문명을 선사했다는 자부심이 컸으며 프로테스타니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감격을 주체할 수 없던 모양이다. 사후 복원된 그의 회고록에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고종)의 키는 5.2ft(160cm) 정도이나 서있는 품이 꽤나 멋있었다. 비록 나라의 운명은 등불 같았지만 우리가 가져온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콩을 볶아 검은색의 액체가 되어 훌쩍 들이키는 커피라는 음료를 '죽음의 약'으로 알고 있던 그의 직원(신하)들은 거듭하여 멀리하라고 충고하는 듯했다. 내가 먼저 마시고 건네자 반대를 아랑곳 않고 훌쩍 들이키곤 웃음을 연신 보였다....(중략)..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말을 잇지 못한 듯했고, 그의 뒤로 허리를 숙이고 있던 신하들은 무릎을 꿇으며 허둥지둥했다. 나는 그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했으나, 귀신이 왔다며 오히려 나를 내쫓으려 했다...(중략).. 나는 그들에게 문명을 선사했고 하늘이 내게 주신 업을 달성했다. 오, 신이시여 이제 그대 곁으로 돌아가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습니다..(중략)..'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국제 경제를 연구했던 '힐 알버트'는 2차 산업혁명이 동아시아 국가에 미치는 영향 중 특히 조선의 통신 혁명을 관심 있게 다루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사랑하여 신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쳤고, '브루스 엘런'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불을 선물 했다며 당시 상황을 빗대어 설명하였다. 


고종과 기념적인 첫 개통 행사 이후 '김부석'과 '엘런'은 추가 마무리 작업과 확장 사업을 위해 종종 만났고 서로의 이름보다 간단한 인사로 소통하곤 했다. 쫙 빼입은 정장과 질 좋은 화장품. 무엇보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커피의 맛을 본 김부석은 엘런이 가진 하나하나를 닮고 싶어 했고 흠모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어설프게 '헬로'를 따라 했지만 그의 영어 발음은 형편없었다. 유일하게 그와 대화할 수 있었던 그의 입을 통해 귀로 들은 여러 동료 관리들은 '헬로'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쳤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던 '여보세요'로 되었다(한국 어원 연구학회 제217호, '인사말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 1998년).


한민족언어어원문화연구소 소장 이득경 교수는 <베끼는 것도 기술이고 용기다, 조선이여>(지는 해 출판사 펴냄, 1998년)에서 '당시 조선의 영어 발음은 한국어의 발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모든 단어의 발음을 한글화 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무엇인가를 닮고 싶고, 갖고 싶고, 되고 싶은 그리움이 은연중에 드러난 말'이라고 하였다. 


2018년 매주 주말을 강제로 TV 앞에 앉혔던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 연출을 맡은 이응복 PD는 논산에 촬영 세트장을 만들면서 한성전기회사 부지를 놓고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님)' , '고애신(김태리 님)', '구동매(유연석 님)'의 삼각관계를 그대로 표현해줄 상징적인 건물을 찾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 놓고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말을 건넬 수 있는 전화기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출처: tvN


서로가 처한 현실, 지위와 관계를 고려하면 '여보세요' 한 마디가 그리움을 대신한다. 그 옛날 김부석이 엘런을 닮고 싶어 했던 것처럼. 지금도 논산의 세트장에는 '한성전기회사' 건물에는 당시 실제 사용했던 최초의 송수화기가 전시되어있고, 고종이 직접 휘호를 남겨뒀다(대한민국 보물 298호). 상대를 부르는 말. '여보세요'. 비록 서로를 바라볼 수 없지만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말. '여보세요'는 그리움이다.




물론.


위의 글은.


다 뻥이다.



악마를 감동시킬 만한 글을 쓰려면


위의 글은 카페에 앉아 10분 동안 상상력을 발휘하며 뜨거운 커피가 식기도 전에 마친 글이다. 그 어떤 것도 찾아보지 말길. 다 거짓말이니까. 


24년 이상을 글 쓰기로 먹고살았던 박종인 기자의 <기자의 글쓰기>. 독자를 유혹하고, 지갑을 열게 하려면 그들에게 그만큼의 명분을 주어야 한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어야 한다. 마치 드라마 다음회가 기다려지듯이. 악마를 소환하고 싶으면 악마를 감동시킬 만큼 주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흉내를 내보았다. 


이 책은 내공이 대단하다(감히 내가 '내공'이란 단어를 그 앞에 얘기할 자격이 되는지). 자주 가지 않는 서점에서 매대도 아닌 분류별 섹션, 내 시선 아주 아래, 발 밑에 꽂혀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리 150페이지, 책의 반을 읽어버렸다. 내 간절함과 그의 진솔함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좋은 글은 진심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러면 진심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본인이 그를 또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야 알 수 있다. 언어가 존재하는 이유며 살아있다는 증거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했던가. 보고 듣기 좋게 다듬어진 글은 악마도 감동한다. 



'구라'에도 혼이 있다면 무죄


영화 <타짜> 중, 전국구 타짜 '평경장'이 고니와 대화를 하고 있다. 


'고니야, 니는 내가 누군지 아니? 내가 바로 화투를 아트의 경지까지 끌어올린..으잉?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물아일체, 으잉? 혼이 있는 구라, 으잉?'


어설픈 거짓말은 들통나게 마련이다. 완벽한 거짓말은 없지만 완벽해 보이는 거짓말은 만들 수 있다. 흔히 혼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 거짓말할 정도면 차라리 정직하게 사업을 해도 성공할 거다. 그만큼 진심이 담긴 글은 큰 위력을 발휘한다. 

출처: 씨네21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중국의 위화 작가가 쓴 <인생>이라는 작품이다. 중국 작은 시골마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살아온 '푸구이' 노인의 일생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그의 굴곡진 인생의 마디마다 새겨진 슬픔의 인생사를 오히려 절제하여 표현하였다. 무엇보다 글 속에 녹아있는 진심. 비록 소설이지만 푸구이 노인의 담담한 말투가 녹아든 문장들은 종종 내 눈에 눈물이 글썽이게 만들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른이 되어 눈물과는 이별한 줄 알았는데도.


출처: 예스24


간결하고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어색함이 없어야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한 가지다. 


'간결하고 입으로 발음했을 때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좋은 글은 입말이라고 하여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해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어린 시절, 가장 실감 넘치고 사실 같은 이야기는 우리 부모님들이 자기 전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최근 읽은 <걷는 사람, 하정우>(저자 하정우, 문학동네 출판)은 읽는 내내 하정우 배우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그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쓴다). 강원국 님의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연설문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특히 연설문 작성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던 그가 그런 고통을 사서까지 했던 이유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활자와 대화의 중간으로 가장 큰 설득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입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꼭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꼭 읽혀본다. 퇴고의 과정이다. 이 몇 가지 단순한 원칙이지만 막상 적용하려면 꽤나 힘이 많이 든다.


책 중간중간 각 챕터마다 저자의 글쓰기 강의에 참석했던 수강생들의 원고를 실었다. 대부분 살아온 삶이 굵으신 분들이라 초고 치고는 완성도가 높다. 다만 그는 몇 가지 첨언만 해주었을 뿐. 


감동을 주는 글. 단 한 명의 독자라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글.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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