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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ul 05. 2019

나를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내면이 단단한 고급 노예입니다(feat. 우량 채권과의 관계)

Find Me! Pick Me!


  실망이다. 또 떨어졌다. 이번엔 면접이다. 매번 서류전형 단계에서 무너져서 미처 면접은 생각 못했다. 첫 질문을 받고 '망했다' 생각했다. <The Secret 시크릿>(론다 번 저, 김우열 역, 살림 Biz, 2007)에서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는 요술램프 속 지니를 불러내는 주문을 외운다. 기본 원리는 3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생각은 현실이 된다 - Thoughts Become Things.


  생각하는 대로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말인데, 난 '망했다'란 생각이 주문이 되어 '탈락'이란 소망을 이루어줬다. 요술램프 속 지니는 한국인이 아니었던가. 처음 면접 소식을 받았을 때 안도와 기쁨의 감정보다 왜? 날? 하는 의심을 했더란다. 면접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나 보다. 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인생 대부분의 중대사는 운이 많이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공들여 작성한 원서는 탈락할 때가 많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해 그냥 대충 제출한 원서가 합격한 적도 있다(비록 필기 단계에서 무너지지만). 


  채용 공고도 드문데 한 번의 탈락이 주는 실망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특히 면접 단계에서 떨어지니 그 상실감은 가슴팍을 콕콕 쑤시는데, 마치 하루 굶은 다음 날 첫끼에 맛난 소고기를 눈 앞에 두고 빼앗긴 느낌이다. 카페에서 파는 당근 케이크를(난 당근 케이크를 좋아한다) 먹으려 포크를 들고 입 바로 앞까지 가져갔는데, '펑' 하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아쉽고 속상하고 그런 복잡한 상실감이다. 대부분 이런 상실감 속편으로 '자기비판'이 이어진다. 근데 나이를 먹으니 그냥 1부에서 끝낸다. 비록 같은 차는 아니지만 버스는 또 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버스가 오면 크게 팔을 흔들어 나를 꼭 태우라고 해야겠다.


저를 사세요! 이자도 드릴게요!


  채권을 아는가? 빌린 금액, 만기 시 받을 이자, 상환 기간 등이 적혀있는 증권이다. 개인 간 차용증, 기업 간 어음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국가나 기관, 기업 등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이 채권을 발행한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이 채권에 적힌 금액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만기 시까지 들고 있으면 채무자인 국가 또는 기업은 채권을 들고 있는 자에게 약속대로 만기 또는 중간에 이자를 지급한다. 


  채권에도 등급이 있다. 신용이 가장 좋은 AAA부터 안 좋은 BBB까지. 신용이 좋은 사람, 즉 금방 곧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에겐 낮은 이율을 적용한다. 생각해보라. 매달 100만 원씩 버는 사람이 1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 왜냐면 그는 매달 고정 수익이 있고 금방 갚을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용이 안 좋은 사람, 갚을 대출금보다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은 사람에게는 회수에 대한 위험이 있어 높은 이율을 적용한다. 나는 우량 채권이라고 확신한다. 저평가되어있다. 


  다시 취업 시장에 나온 나는 '행복'해지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고, 돈이 부족해 '본인 채권'을 발행했다. 채권 가격은 연봉이고, 이자는 내가 앞으로 회사에 벌어다 줄 이자가 되겠다. 물론 상환기간은 내 고용기간이다. 우량 채권인지 불량채권인지 투자자들, 즉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더 알 것이다. 그런데 인사 담당자들의 판단은 내 기준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고급 노예입니다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옛날 노예는 주인의 눈을 피해 독립을 꿈꿨지만, 요즘 현대 직장인들은 능력이 뛰어난데도 더 열심히 일을 하고 고용주의 눈에 들기 위해 시간과 노동을 바친다. 조선말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노비문서가 태워질 때 대부분의 노비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고용 계약서가 없어지면 걱정과 두려움의 눈물을 흘린다. 어디엔가 소속됨이 없는 불안감이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능가한다. 살기 참으로 퍽퍽해졌다. 죽을 때까지 맘 편히 살지 못할 세상이다. 분명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데 일을 못한다는 것, 아니 보수를 못 받는다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못 받는다는 생각에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긴 병이다. 비교는 정반합의 이치로 우상향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척도다. 비교를 통해 삶에 강렬한 전기적 자극을 받으며 성장을 한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데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임상 심리학자 이자 문화 비평가인 조던 피터슨 교수는 그의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수컷 바닷가재가 싸움을 통해 승자의 우월감을 쌓아가면서 무리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며 살아가는 일화를 소개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 경쟁 싸움에서 두 번 연속 진 수컷은 다시 무리로 돌아가기 어렵다. 패자의 DNA가 각인되었기 때문이라. 경쟁에서 이겨본 바닷가재는 수컷의 향을 내뿜으며 당당히 걷는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싸움을 통해 서열을 맺진 않는다(어둠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할지도). 어느 정도 강점을 보유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흔들리지 않는 심지. 하루에도 수만 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유혹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내면 경쟁을 이겨낸 자만이 본연의 아우라를 뿜을 수 있다. 오직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당당해지라고. 그게 잘 안되면 의식을 해서라도 어깨를 펴고 똑바로 걸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승자의 기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단다.


  자소설을 쓰는 내내 어깨가 많이 굽었다. 크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제출 버튼을 누른다. 저번 달에 썼던 글보다 더 문장도 깔끔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방구석에서 모니터를 노려보고 쓰는 글이 조금씩 좋아진다. 느낌상 그렇다. 어깨를 펴고 거실에 나와 창밖을 바라본다. 이제 곧 노을이 질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다. 밖으로 나가 걷기로 한다. 어깨를 펴고 힘차게 팔을 휘두른다. 결과가 어떻게 되던 상관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내에 나는 그대들이 찾는 고급 노예임을 3,000자 정도로 알렸다. 


그만이다.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 하는 사이 서류에 또 광탈했다. 10년 뒤를 살고 있을 나를 만나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고. 괜찮은 거냐고. 지금 당신은 잘 살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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