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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20. 2019

미필적 고의로 난감할 때

feat. 상담원 직원분들로부터 배우는 배려

  예전에 개그콘서트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필적 고의'를 주제로 한 코너가 있었다. 음식 배달원에게 값을 지불하려고 하려는 찰나 걸려오는 전화, 마침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의도와 상관없이 지불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우연일 수도 아니면 일부러 그럴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고의성이 다소 짙을 


  며칠 전 난 3차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300여 미터 남겨놓고 유턴(U-turn)을 위해 1차선에 달리고 있는 차를 추월했다. 유턴을 시도하려는 순간 신호등 위로 '보행 시'라는 표지판이 보여 좌회전 신호가 있었음에도 멈춰 섰다. 갑자기 내가 추월했던 차량에서 운전자가 내렸다. 그러더니 내가 좌회전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유턴을 하기 위해서 멈췄다고 대답했다. 차에서 내려서까지 그렇게 항의해야 하나 싶었다. 난 신호를 지켰을 뿐인데. 그럼에도 그 상황은 충분히 뒤에 따라오는 차에 있어서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 누군가 자기 차량을 추월하고 바로 앞에 서서 멈췄으니. 다행히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때론 내 의도와 달리 상대가 오해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순수한 선의의 말과 행동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조롱, 멸시, 허세로 비칠 수도 있다. 보통은 상대의 성향이나 상황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아서다. 실의에 빠져 우울해있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잘해보려는 의지를 '싹둑' 잘라 버리듯 말이다.


  그렇다고 상대의 기분을 항상 예의 주시하며 살아갈 수 없지 않나? 그렇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안테나는 본인을 피로하게 만든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상대를 위해 보이는 양보와 마음 씀씀이를 '배려'라고 한다. 배려는 습관이 되면 좋다. 상황에 맞게 생각하기보다 공손한 말투, 상대가 편하게 느낄 행동들을 미리 연습해 놓으면 된다. 


  사용하는 기기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원에게 전화를 해보면 그들의 친절한 말투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절차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먼저,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불편했던 상황에 대해 공감한다. 그리고 해결 의지를 알린다.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한번 불편한 점이 없었는지 확인한다. 1주일을 넘지 않는 기간 내에 고객에게 그 이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진 않고 그들의 대응에 만족하셨는지 최종 확인한다.


  어찌 보면 다소 기계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절차화 된 일련의 대화법은 감정 과잉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찔하고 골치 아픈 상황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며칠 전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본다. 만약 공손하게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해할 수도 있었겠죠.. 하며 양해를 드렸으면 어땠을까. 서로 기분을 상하지 않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미리 그러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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