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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05. 2019

일상을 험프 데이로

그동안 앞만 보며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 때

  난 여름에 약하다. 워낙 땀이 많아서 찝찝한 더운 날씨를 싫어한다. 거기에 습한기가 더해지면 말 다했다. 유독 이번 주는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곧 영화가 시작될 듯싶다. 매해 여름을 맞이하지만 항상 힘들다. 유독 올해는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 그리 반갑지 않았다.


동굴에서 헤매다


  몸이 안 좋았다. 하루 종일 머리는 무겁고 다리는 힘이 없었다.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자라왔다는 자랑거리가 무색해질 만큼 온몸이 열에 지배당했다. 몸이 아프니 생각도 약해지고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3개월 전으로 돌아가 본다. 새벽에 눈을 뜨면 곧바로 이불을 정리하고 가볍게 세안을 한 후 산책을 갔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고요한 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 마음이 개운했다. 불안한 감정으로 온몸이 덜덜거릴 때면 신발을 고쳐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었다. 걷는 데 익숙해질 즈음 조급함이 사라졌다. 당장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마치 곧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할 듯한 기분이었다.


  기대는 항상 배신한다. 우연이 기회가 되어 지원한 회사는 면접에서 떨어졌고 모두 서류 탈락했다.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주먹 쥐고 일어설 힘도 없었다. 쉼이 필요한 시기였다.


문을 열어야 밖으로 나간다


  지난 금요일 저녁 즈음 예전 회사의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금 나를 보고 싶다며 저녁 한 끼 같이 하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낸 날도 많았는데 좋은 기회였다.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 봐도 좋을 분이다. 내가 부럽단다. 본인은 이직하면서 중간에 단 하루라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고. 어쩌면 쉬는 시간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일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고마웠다. 무엇보다 잊지 않고 찾아주고 위로도 해주시니. 순간 그렇게 헛되게 산 인생은 아니라는 무언의 속삭임이 들리면서 울컥했다. 


  길은 밖으로 나있다. 닫힌 문을 열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를 찾고 돌려야 한다. 잠겨 있다면 열쇠를 찾아야 한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잠시 직장과 일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시간의 흐름에 내 맡긴 적이 있었던가. 쉬는 시간에도 난 계속 무엇인가를 해왔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집단에 없으면 불안해했고 소속감이 없어지는 때를 두려워했다. 


  나가자. 문 앞에 서기까지가 어렵지만 막상 나가보면 문제는 알아서 해결된다. 부모님을 모시고 교외로 나가봐야겠다. 그동안 같이 있었던 시간이 부족했다. 



난 옛 건물의 처마를 좋아한다 - 전주 "경기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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