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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1. 2019

#6 세상 탓은 이제 그만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냉소주의가 빚어낸 비극


  이번 장의 첫 페이지는 세상 모든 불만을 다 짊어진 듯 한 표정을 한 범죄인의 초상화가 실려있다. 실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몇 해전, 아니 몇 달 전 만해도 미국과 캐나다에 심각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사람이 다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도 얼마 전에 버릇을 고쳐 준다는 그릇된 명분으로 평범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살인사건이 발생했었다. 그들 모두 나름의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잘못된 것을 고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밝히며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하려 했다. 세상은 과연 살 가치가 없는 사악한 곳일까?

  카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다. 단지 하나님이 그의 재물을 받지 않았다는 원망 하나로, 하나님을 괴롭혔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전부 부숴버리겠다는 헛된 믿음을 키워왔다. 인간 존재 자체가 쓸모없는 고기 덩어리이며 세상은 불공평하고 가혹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원래 삶 자체가 고통이고 비극이다. 이런 사실을 진작 받아들였다면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p.220
삶은 고단하다. 모두 삶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도 피할 수 없다...(중략).. 인간의 통제력은 제한되어 있다. 결국 우리가 나약한 이유는 우리 잘못이 아니다.

오늘 당장 삐뚤어지지 못하는 이유


  역사상 가장 흉악한 연쇄 살인범 칼 팬즈는 미국,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21명을 살해했고 수감 도중 교도관까지 살인하는 인간 종말의 끝을 보여준 사람이다(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살인은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진실은 어쩌면 인간은 통제력에 있어 한계가 있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에 열등감을 느껴서일까. 그로 인해 인간 자체가 존재해야 하는 가치를 못 찾아서일 거다. 이런 비관적인 생각은 세상이 살만하고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을 방해한다. 어리광이 발동하고 세상을 탓하며 마치 의로운 일을 한 현자 인양 하나님의 흉내를 내며 세상에 본인 스스로 재판을 벌인다. 이쯤 되면 학살이 진행되고 본인 역시 자살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어지럽히고 싶은 본성이 있다. 

  그럼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이고 대를 이어 전해지는가? 오히려 반대로 세대를 지나오며 악의 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인간이 지닌 고유의 선이 악을 지배한다.


p.227 예를 들어 한 부모가 3명의 자식을 낳아 학대하고,...(중략).. 하지만 실제로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학대는 줄어들고 있다. 학대를 막으려는 조치들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심성에서 선이 악을 지배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운명 탓은 더 이상 멋있어 보이지 않아


  인간 존재 자체가 실수이며 비극이다. 많은 철학과 문학작품에서 사유의 명제로 사용되어 왔다. 그래서 왠지 죽음과 비극을 연관 지어 허무를 이야기할 때면 지식인으로 비칠 때가 많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인간은 사유하고 고로 존재하니까. 세상을 탓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안 된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은 구 소련의 공산주의 시대에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가 발각되어 악명 높은 수용소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얼마나 지독했던지 성경에 나오는 가장 큰 시련의 대상자, 욥 조차 그와 결을 같이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일반인이라면 체제를 원망하고 본인까지 부정하며 자살로 끝을 내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솔제니치는 그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 넘쳐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본인의 삶을 잘게 조각내어 분해했다. 요리조리 뜯어보고 해로운 부분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곤 <수용소 군도>를 집필했고, 이 책은 서구권에 밀반입되어 구 소련의 허상뿐인 공산주의를 고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미 있는 자기비판이 이루어낸 혁명이었다.



삶은 안정과 붕괴를 반복한다


  대부분의 철학에서 명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삶은 비극이며 불안정' 상태이다. 애초에 모든 만물이 안정적이고 행복하고 위험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인간이 신을 벗어나 이성을 무기로 세상을 당당히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결정체인 철학은 본래 답이 없다. 그럼에도 삶의 진지한 고찰을 계속하는 이유는 비록 답은 없지만 수많은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삶이 원래 그런 거라고 이해하면 모든 답이 간결해진다. 세상에 대한 불필요한 탓과 원망도 없어진다. 그런 세상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고쳐보려 시도하는 순간 우주 악당이 된다. 그런 악당은 응당 히어로에겐 당연한 통제의 대상이다. 


p.231 
삶이란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체제를 세운다...(중략).. 처음에는 하와처럼 낙원과 같은 곳에서 순수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성공이 계속되면 무사안일에 빠져 마땅히 해야 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p.232
당신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삶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다.



내 안의 세상을 정리하자

  

  이번 장의 제목은 분명 '당신의 방'이라고 표현했지만 물리적으로 내가 저녁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그런 '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 의지가 반영되어 돌아가고 있는 소우주, 즉 자의식이 반영된 내 안의 세상이다.

  감히 조던 피터슨 그의 메시지에 첨언하자면 내 세상이 깨끗하면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 있다. 손님은 깨끗한 내방을 일부러 더럽히려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한 둘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선한 사람들이 모이면 타락한 지구에 조그만 천국을 형성한다. 실제로 방을 청소해보면 깔끔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기분에서 악하고 더러운 행동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p.234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강인한 정신을 갖게 되고, 더욱 당당하게 미래를 열어 갈 것이다. 더는 삶을 쓸데없이 어렵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중략).. 당신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지만,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누구보다 평화와 세상의 모든 선함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정리하며


  세상이 더러운 시궁창이 같다고 탓하기 전에 본인의 방부터 살펴보라.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인사 발탁 과정에서 친인척 또는 가족 내 문제가 엄격한 잣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일만 잘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태 살펴본 맥락으로는 가정 하나 평화롭지 못하다면 더 큰일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점검 과정에서 FOD(Foreign Object Damage)를 철저하게 교육하고 시행한다. 항공기 조립에 쓰이는 작은 나사 하나가 엔진에 흘러들어 가면 화염을 일으키고 수많은 승객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실제 사고사례는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남 탓, 세상 탓하기 전에 본인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건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 선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TV 또는 대중매체에서 서로를 헐뜯고 욕하고 끌어내리려는 정치인들을 많이 본다. 근거 없이 무조건적으로 정부와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과연 그들의 방은 안녕할까?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격을 갖추는 게 당연한데 말이지.



3줄 요약


  - 세상을 탓하는 사람들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냉소주의를 갖고 있다

  - 본인의 방부터 정리하는 행위로부터 세상은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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