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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2. 2019

#7 쉬운 길 보단 의미 있는 길을 걷자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쾌락을 피해야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내면서부터 인간은 저주를 받았고 삶은 고통으로 채워졌다. 끊임없이 고통과 싸워야 한다. 시련과 고통에 진 자는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이러한 저주에 위대한 인격체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간단히 지워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바뀔 수 없는 숙명이라면 간단하다. 순간순간 쾌락에 집중하면 된다. 쾌락에 집중하는 순간 모든 굴레로부터 오는 고통과 허무로부터 잠시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다. 솔직히 쾌락은 즐겁다. 


p.238 삶은 비극이고 고통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즉각적이고 이기적인 쾌락을 좇는 삶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던 피터슨 교수는 이 말을 뒤집어 언급했을까? 아마 쾌락이 주는 결과를 인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카인과 아벨은 절대 신에게 적절한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그들의 즐거움을 지속할 수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쾌락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하나의 필수적인 에너지 요소였나 보다.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 세상에는 역시 공짜는 없다. 신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했고 그 대지를 빌려 쓰고 있는 인간은 당연히 임대료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냥 내 생각이다.



희생과 보상은 비례한다


  시험 기간만 되면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떠올라 집중에 방해한다. 술도 마시고 싶고, 그냥 날씨도 좋아 보이고, 백화점에선 이번에만 세일을 할 거 같고. 이런 충동에 일일이 답하다 보면 결과는 뻔하다. 어쩜 이리도 운은 이런 상황에는 눈 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죄를 지닌 인간은 평생 노동을 해야 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을 통해 그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행나무 펴냄, 2012년)은 다양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곁에서 그들을 관찰하며 나눈 이야기 속에서 일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설명해준다. 일은 분명 고되고 힘들지만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면에서 숙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을 통해 무엇인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준다 했다(참고: https://brunch.co.kr/@sat10am/4).


p.242 죽음은 노동을 통해 늦춰진다. 노동은 '나중에' 얻을 이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행위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일, 즉 노동을 '만족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노동을 통해 노력하면 언젠가는 절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충동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면 그 미래는 어둡다.


p.243 지금 올바르게 행동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충동을 자제하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시간과 장소에서 보상을 받는다.


  이렇듯 노동은 미래의 보상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위에서 설명한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노동의 결과물의 일부를 떼어내어 누군가 '공유'하는 행위는 희생을 의미한다. 노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를 쾌락에 내던지지 않고 미래의 나에게 결과물을 바치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p.244 다른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는 행위는 결국 훗날의 당신 자신과 공유하는 행위다...(중략).. 희생과 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그럼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들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 그리고 힘든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있다. 목표를 향한 노동은 미래의 나에게 보상을 '공유'하는 행위이며 현재의 쾌락을 희생하는 것(만족 지연)이다. 가장 큰 것을 희생해야 한다. 하나님이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은 이유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49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성공한 사람은 희생한다! 성공한 사람은 희생할 줄 알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p.250 하나님은 단순한 제물이 아닌,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치길 원한다...(중략)..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현실세계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p.251 지금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중략)..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 미래의 번영이 보장된다.
p.253 고통과 아픔이 체계를 규정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희생을 통해 고통과 아픔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다. 희생이 클수록 효과는 크다.



악에 맞선 예수의 행동의 의미


  희생은 곧 추락이다. 아이러니하게 추락하지 않으면 성취도 없다. 밑바닥까지 가본 자만이 내면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악마로부터 3가지 유혹을 받는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는 유혹이다. 첫 번째 유혹은 40일 동안 굶주린 그리스도에게 돌을 빵으로 바꿔 허기를 달래라는 것. 두 번째는 예루살렘 성벽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세상의 모든 나라의 절대권력을 주겠다는 유혹이다. 각각의 유혹에서 예수는 희생을 각오하고 모든 유혹을 물리친다. 그중 마지막 유혹은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 최고의 보상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 아니겠는가.


p.270 최고의 보상을 받으려면 즉각적인 만족과 본능적인 욕망을 거부해야 한다. 삶은 원래 비극이다. 그래서 편의주의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중략).. 악을 이기려면 특별한 희생이 필요하다. 

 

의심하지 말라


  큰 목표를 세웠고 희생하기로 각오했다면 분명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 것이다. 이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간은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며 예측만 할 뿐 어떤 위험과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는 철학자 데카르트와 같이 사고하며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p.286 내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어떤 냉소주의자도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탈출할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교묘히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인간은 선을 행하는 것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데, 왜 그렇게 인간이 그리스도에게 유혹을 던진 악마와 같이 행동하는지 궁금해했다. 특히 20세기 초에 일어난 대규모 살인 살육에 대한 잘못된 행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결국 본인에게도 나치의 수용소 교도관과 같이 악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미,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제일 높은 가치체계로 두어야 한다.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질서가 있다. 쉬운 길은 편의주의이며 20세기 상황처럼 인간 본성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악을 불러낸다. 


p.288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긴다...(중략).. 바르게 해동하면 심리적인 안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p.289 불평등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아무리 원망해 봤자 바뀌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삶이다...(중략).. 쉬운 길만 선택하는 편의주의는 비겁하고 천박하며 잘못된 것이다. 편의주의가 반복되면 사악한 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p.290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중략).. 삶의 모든 요소가 최적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의미가 생겨난다.



정리하며


  조던 피터슨 교수의 이야기는 각 법칙마다 소주제로 나뉘어 있지만 어느 하나를 생략해 버리면 그가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에 구멍이 나버린다. 매우 촘촘히 짜인 이야기 구조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 메시지가 이번 법칙에 녹아있다(솔직히 오랜 시간 읽었지만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법칙에서는 희생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큰 목표를 달성하여 절대 선을 행하고 있는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하고 이왕에 희생할 거면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라 한다. 희생이 클수록 미래의 내가 받게 될 보상도 커진다고. 그러기 위해선 편의주의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편의주의 즉, 쉬운 길은 무조건 나쁘다. 충동이며 혼란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의미를 찾고 질서를 찾아내야 한다. 의미 있는 길을 걷겠다는 것은 그보다 먼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일이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 나아가는 삶을 만들어내는 의지다. 이러한 의지는 분명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심지어 본인 까지도. 지금보다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다.



3줄 요약


  - 노동은 미래의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공유이며, 곧 희생을 의미한다.

  - 의미 있는 일을 찾으면 혼돈과 질서 사이에 균형을 가져다준다.

  - 방부터 정리하고 고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To be continued..

예정 -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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