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연애같이 더러운 건 하지 말아

by 이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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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중국 말과 거의 같다는 거, 알고 있었니?


선생님께 이걸 말씀드리려다 부끄러워 적지 않았어. 이미 무식한 모습은 충분히 보여드린 것 같단 말야. 너도 몰랐지? 몰랐다고 해줘. 우리 함께 모르면 조금은 나아지는 것만 같아. 너는 또 전혀 나은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말야. 아무튼 너무 신기한 거 있지? 대만은 섬나란데 말야.


대만 아래쪽 타이난까지 내려갔다가 타이페이로 돌아왔어. 어느새 새 친구들도 만났지. 독일 친구인 한스는 벌써 5개월째 아시아를 돌고 있대. 여행 중에도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데, 나야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러운 마음이야. 여행하며 동시에 일하다니,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미국 친구 에밀리아는 태국에서 두 달을 보내고 대만으로 넘어왔는데, 여기는 수영할 곳이 없다며 매일같이 툴툴대. 그러면서 또 금방 떠나지는 않더라고. 바다 대신 대만 사람들의 친절에 빠져버린 게 아닌가 싶어. 남쪽 도시 가오슝에서 올라온 커플도 있어. 나랑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숙소도 같은 거 있지.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게 참 건강해 보이더라고. 나도 그런 색깔을 갖고 싶은데 좀처럼 피부가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우리 부모님은 내가 새까맣게 변하면 분명 한 소리 할 거야.


매일같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어. 타이페이에 온 지는 벌써 사 일. 오늘은 남문 쪽의 시장을 다함께 다녀왔어. 함께 용과를 사 먹고 씨를 뱉고, 낮잠을 자거나 야시장에서 잔뜩 취하고. 그게 끝이야. 너무 신나겠지? 그게 끝이라니까.


이전에 선생님께 쓴 편지는 잘 전달해 드렸니? 잘 도착했다고 믿고 있어. 나야 너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네게 맡긴 것이니 어떻게 처리하더라도 달게 받아들일게. 이런 말을 하니 왠지 벌을 받아야만 할 것도 같네. 가끔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혹하게 처벌당해야 마땅한 것 같아. 아니, 냉철하게 심판당할 날이 꼭 올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맘 편히 죽을 수가 없잖아.


이 일방적인 편지를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면한 게 벌써…… 4개월이나 되었으니까. 날짜로 치면 5개월인가? 웃기지? 6년이라는 시간도 결국 먹다 흘린 용과 씨와 다를 게 없어.


이제와서 그 날의 나를 자주 만나. 대부분은 웅크려 앉아 발발 떠는 모습으로. 어느 날 낮잠에서 깼는데, 창 밖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당장 결혼을 하고픈 건 아니지만, 너와 시간이 좀더 쌓이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 이해가 가?

‘불가능하지는 않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 결혼 앞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와도 괜찮은 거야? 세상에 단 한 명 나와 혼을 묶을 사람을 찾는 거라면 말야. 그런 행동을, 단지 막을 필요가 없어서. 그런 이유로 휩쓸리듯 저질러 버려도 되는 거야? 물론 몇 번씩도 결혼하는 세상이라지만 말야. 그래도 다음 결혼을 염두에 두며 식장에 들어서는 사람은 없잖아. 그건 정말…… 정말 너무하잖아.


병운아.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데 동의하니?


동의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러면 우리의 마지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단 말야. 함께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주말이 되면 서울의 맛집이나 카페를 돌아다니고. 가끔은 남양주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강릉으로 여행을 가 해변가 카페에 앉고. 사소한 것에 조그맣게 다투곤 하지만 그렇다고 엉엉 울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를 긋지는 않고 말야. 대체 뭐가 이유가 되었던 걸까. 어째서 우리는 흠뻑 젖고 미쳐버리지 못했어? 겁쟁이들.


병운아.


연애와 사랑은 다르다는 데 동의하니?


결혼과 사랑은 어때? 그 두 개가 다른 거라는 데에도 우리는 동의해버리고 마는 거야?


결혼하지 못했다. 이게 그저 우리의 6년이구나. 마지막 날 카페에서 너를 사랑했냐고 물었지. 이 편지가 그 날 이후로 목에 걸려 있던 대답이야. 나는 우리의 하루를 지독하게 사랑했구나, 병운아. 조금씩 내 맘 찢어 부치지 못하면 밤 중에 아파 몸을 떨어 댈 정도로. 돌아가도 결말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건 알아냈어. 안다는 게 늘 축복이지만은 않다는 것도. 우린 언제나 필요없는 것까지 너무 많이 알려고 했지.


그러니 내 편지들을 용서해 주겠니. 가난한 우리 지난 날들을 끌어안고 말야. 애처롭게 바라봐줄 수 있겠어? 나는 답을 바라지도 못해. 네가 목소리를 대체 어디로 보낼 수 있어? 나는 이미 그 곳에 없어. 웃기지, 이건 네가 그토록 화를 내던 내 단방향짜리 소통이야. 여기 답할 수 없는 글자가 간다. 어디 당해 봐.


뜯지 않고 버리지는 말아 줘. 내 잉크가 세상 한 번 못 보고 나가떨어지게만은. 나는 태어나지 못한 편지를 안고 바다가 마르도록 울어 댈 거야. 우리 아이를 숨쉬게 해 주어.


종종 편지할게. 누울 곳 없는 말들이 많아.

점점 많아져.



2018.07.07

바람과 조약돌로 가득한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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