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여기 목에 채워주세요

by 이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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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 해 연애해 보니 후회가 없더라.’


어제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런 글을 봤어. 함께 다니던 중국인 친구 량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세상에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느냐고 하더라. 한국인들은 꼭 그런 거냐고. 나는 뻔하게도 너의 동그란 눈망울을 떠올렸어.


웃기지 않아? 최선을 다 한다고.

세상에 설렁설렁 연애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그런데 또 말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어. 량의 말 있잖아.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것만 같다. 나는 과연 그랬을까 싶은 거지. 너를 제외하면 표본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말야. 그럼 너에게도 한 번 물어보자.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 했을까? 신연정은 김병운에게 최선을 다 하는 연인이었니? 이 질문에 대해 왠지 우리는 반대의 대답을 내어놓을 것만 같네.


근데 최선이라는 말, 정말 좀 어이없지 않아?


꽤나 능동적인 단어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잖아. 애정이라는 게 마치 언제라도— 언제라도 우리 마음먹기에 달린 것처럼. 물론 무슨 말인지 모르지는 않지만, 그치만. 억울하잖아. 최선이라는 단어가 나를 가차없이 때려대고 있어. 다들 그렇게나 마음을 곧잘 제어하는 거야? 최선을 다해 볼걸…… 하고 아쉽다는 듯이 말해버릴 수 있는 거냐고.


그러니까 저 글을 올린 사람 있잖아. 최선을 다 해 후회가 남지 않았다는 사람. 저 사람이 이루어냈다고 믿고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대단히 본인이 해낸 걸까. 나는 묻고 싶어.


당신에게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선택지라는 게 대체 존재하기나 했나요?


마음만 먹으면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도, 아니면 가차없이 사랑을 거두어 들일 수도 있었나요? 반대로 이 남자에게 그 선택지밖에 없었다면? 최선 이외의 모든 것이 상대방에게 갈갈이 찢겨 그것밖에 집어들 것이 없었다면. 그럼 당신은 외려 사랑에게 목줄이 채워져 끌려다닌 사람으로, 나는 당신에게 박수 대신 위로와 부러움을 잔뜩 담아 내밀어야 할 겁니다. 그만큼 아프고 매혹적이었겠다구요. 강렬하게 쓰라리고 포근했겠다구요. 애정은 그 만큼이나 가혹한 거라구요.


글 쓴 사람, 조금 불쌍하지.


겨우 나의 변명을 위해 해체당하고 있어.

그것도 최선을 다해. 하하.


그래도 우습게만 생각하지는 말아 줘. 이젠 정말 애정이란 게 어느 색깔인지 모르겠어. 내가 있는 힘껏 널 좋아했던 건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지 모르겠다고. 가해하면서 동시에 당해버리는 게 이 세상에 또 뭐가 있더라.


나는 차마고도 위에 있어.


하늘에는 별이 한가득이야. 서울은 항상 깜깜했잖아? 여기까지 도망치고 나서야 영롱하게 보이는 게, 내 마음과 다를 게 하나 없네. 사진을 찍어 동봉하려 했는데 거기엔 별이 담기지가 않더라고. 나는 새까만 사진을 들고 한참을 서 있었어.


나는 우길 수밖에 없단 말야. 분명히 거기 뜨겁고 빨간 피가 콸콸대며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이 밤에 저 흰 점들이 오래된 땅으로 몽땅 쏟아지고 있다고.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시꺼먼 곳에도 한가득 반짝대겠지. 언젠가 그게 보인다면 나에게 와 말해줘. 이 곳의 사진을 첨부할게. 별이 대체 어딨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위험에 처하게 될 거야.



2018.08.12

밝고 시린 고개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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