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는 전부 중독성이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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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방구석에서 십 일째. 아니, 이십 일인가?
구조 요청.
너에게 뭔가 쓴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모르지. 달라질 수도 있겠지. 안 달라질 수도 있고. 그래도 어느 쪽이 되든 전부 네 탓이라 울고불고 원망할 수는 있겠지. 아무것도 안 하면, 계속 이대로 있어야 하는 거잖아.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안에서 무얼 하고 싶지도.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모르겠어.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 짜증 나.
아니, 짜증을 내려는 건 아냐.
슬프다거나 한 것도 아냐. 슬펐으면 좀 나았겠지. 엉엉 울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엉엉. 소리가 좋잖아. 앙앙도 좋고.
어쩌다 여기 안쪽이 잔뜩 해지고 얇아졌을까? 혼자가 된 것도 대략 이 주쯤 된 것 같아. 그 즈음 감기몸살이 났거든. 그런 채 배낭을 메고 걷다가 발목을 조금 접지르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도시로 와 사오 일 정도 누워 지냈어. 큰 도시로 우선 이동하려 했는데 운전자가 말리더라고. 이런 몸상태로 차를 스무 시간씩 탔다간 정말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산골에서 쓰러졌다간 정말 큰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말야. 얘기를 들어 보니 스무 시간보다 훨씬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거 있지. 무서워서 곧바로 알겠다고 했어. 두샨베부터 함께하던 일본인 친구 나카지마는 남은 시간이 없어 곧바로 떠났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갑작스레 혼자가 되는 건 위험하다고 말야. 그것도 아무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 채로,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아. 완전히 고립되어 버렸어. 완전히.
며칠 누워 지내니 감기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치만. 그치만 이게 뭘까. 바깥은 이렇게나 시리고. 왜 여전히 나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 어째서 이렇게나 무섭고, 나는 이런 데서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왜 여기까지 왔지? 또 어디로 가야 해?
나, 그만 돌아갈까?
그렇잖아. 거기였다면 이런 것쯤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감기쯤이야, 주사 한 방에 한 숨 자면 완전히 낫는 거잖아. 무엇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잖아…….
우울이란 건 중독성이 강해. 포근하니까. 한 번 맛을 보면 멈출 수 없이 깊어지니까- 그러니까 여기 내 안쪽 바다로 계속해서 잠기는 거야. 계속해서. 저 바깥에서 나는 소리는 이미 들리지가 않고. 혼자 중얼대는 것만 머리에 웅웅대며 울리지. 매일같이 그걸 덮고 자. 아늑하게. 여기 아래가 너무 아늑해. 모르겠어. 나가면 뭐해?
물론 저 밖은 해가 쨍쨍할 수도 있겠지. 누군가가 내 몸을 닦고 꼭 안아줄 수도 있을 거야. 그치만 눈에 보이지가 않는 걸. 여기보다 훨씬 더 추울지도 모르잖아. 한껏 비바람이 칠 수도 있잖아……. 왠지 그럴 것만 같단 말야.
진통제는 전부 중독성이 있대. 알아?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 말야. 잔뜩 불안정하고 날카로운 것들. 한껏 거칠고 위태로운 것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결혼하지 못한 것 말야.
우리 너무 안전해서, 그래서. 감정의 족적이라는 게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말야. 가만히 멈춰 서있고. 오해하지 마. 너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나를 탓하려는 건 더욱 아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문제를 기피하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고. 그렇다고 도망치며 살기엔 우리 욕심이 너무 많았지. 결핍마저 손에 쥐어야만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결혼 같은 것,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아무튼 나가야겠지? 더 늦기 전에. 아예 갇혀버리기 전에 말야. 네가 뭔가 해줄 필요는 없고, 그냥 그대로 있어 줘. 그대로. 어딘가에서 이걸 읽어 줘. 읽지 않더라도 나는 몰라. 네가 읽었다고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나는 꼭 다음 말까지 보내기 위해 여기서 나갈 거야.
억지로, 한 번이라도 세상으로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올 거야. 한 발짝만 내딛으면 돼. 일단 나가기만 하면. 감정이란 건 세상에서 제일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잖아. 중독되지 않은 사람 같은 건 그냥 싸이코패스라 불러버리면 그만인 거잖아? 사람들한테서 청량한 걸 받고 그 값으로 음침한 걸 내어줘야지. 우린 전부 다 건강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진 마. 힘들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은 당장은 괜찮으니까. 그보다 위험한 사람들은 그 시간에 어떻게 끝낼지를 고민하고 있지. 욕심을 잃으면 온순해져. 나는 싫어. 평생 사납게 울어 댈 거야.
바깥에서 또 쓸게.
고마워.
2018.9.27
침대 하나, 히터 하나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