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그 헤어짐을 추억하며

굿바이 나의 집이여

by 오드리박

결혼 후 4번째 이사를 시작한다.

이사를 위해 업체가 들어오고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큰 짐들이 내려가고 노란 바구니에 담긴 작은 짐들이 내려가고 드디어 이사 들어오기 전 상태의 집의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으로 전체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온 나의 집

벽지, 바닥재, 타일, 콘센트... 작은 조명들까지 여기저기 다니며 직접 고르며 설치하며 정성을 들인 집이다. 아직도 입주 청소를 하던 나의 뒤에서 서로 씨름도 하고 서로를 잡으려 돌아다니던 아이들의 모습과 목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 작던 아이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을 품어준 집을 떠나려니 너무 아쉬웠다. 아니 서운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가는 것이 나의 소중한 일부를 주는 것같이 미련이 남는다. 짐들이 하나 둘 나가고 비어 가는 집 곳곳을 보며 오히려 나의 마음은 지난 기억들로 가득 차오른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집안의 구조를 바꾸고 가구를 옮겼는지.. 집안 곳곳이 나의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오롯이 남아있다. 텅 빈 집안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남기며.. 울컥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리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참으로 고마운 집이었구나. 우리 아이들, 나와 남편 우리 네 식구를 참으로 포근하게도 품어주었구나. 덕분에 우리 무탈하게 잘 살고 떠나는구나.'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서 나를 가장 편하게 쉬도록 도와준 이 집에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남긴다.

고마워... 그리고 기억할게... 10년의 시간을.....


내 기억 속 또 다른 집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다 보냈던 저 깊은 기억 속 집이 있다.


초등학교 후문 근처에 있던 작은 골목의 첫 집

마당과 화단 옆에 수돗가와 장독대가 있던 집

집 앞 골목이 친구들이 가득한 놀이터였던 집

내 막내 동생이 태어난 그날이 선명한 기억으로 있는 집

삼 남매의 사진 속 곳곳에 남아있는 그 집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의 모습은 막내가 태어나는 그날 아침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동생이 태어나는 게 그저 좋아 골목에서 팔 벌리고 돌며 '동생이 생긴다'를 외치던 그날부터이다. 크지 않았던 화단에는 감나무, 배나무, 모과나무, 보리수나무, 작은 포도나무까지 계절에 따라 열매를 따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온갖 채소를 심고 저녁 반찬으로 따던 기억도 선명하다. 도시였지만 시골 같은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가지, 오이, 깻잎, 상추, 부추, 호박까지 그 화단은 참 많은 생명을 품었다.

봄이면 씨앗 뿌리고 가을이면 감과 모과를 따고 겨울이면 화단을 파는 아빠와 김칫독을 묻는 일이 일상이었던 집이었다.

그리고 그 골목이 참 좋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친구가 있고 모든 놀이가 가능했던 그 골목에서 기억은 조각조각 이어진 퀼트 천처럼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도 집 안 구석구석, 앞집과 옆집에 살던 친구들을 눈앞에 그릴 수 있다.

이런 기억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삼 남매의 기억 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 각자의 가정을 꾸러 살지만 함께 모이는 명절이 되면(그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간 후에도) 그 집을 통해 쌓았던 기억들을 펼처놓곤 했다. 서로 같은 기억도 있고 다른 기억도 있고 각자 가지고 있는 기억도 있지만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았다.

결혼해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명절에 그 집을 찾아갔었다.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도 가고 그 집도 찾아가는 그 길에 우리는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들떠있었다. 우리 기억 속 문방구, 분식집, 달고나 노점들이 있던 자리를 떠오르는 대로 경쟁하듯이 이야기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집. 에 섰을 때 우린 약간 실망했다. 우리 집만 조금 바뀌어있었다.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는 현재 주인이 우리 집에 있던 우물과 대문을 없앴고 화단과 건물 일부도 사라져 있었다. 이런.... 실망스러움이 정말 컸다. 우리 삼 남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 동안 말을 잃었다. 마치 우리의 기억 일부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집을 볼 수 있었던 때가 좋았다. 이제는 그나마도 볼 수가 없다. 그 지역이 재개발구역을 지정되었고 지금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우리들의 기억으로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아쉽다. 요즘 도시 재생 사업도 많이 하던데... 재개발지구로 되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나는 내 마음속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집!이다.


이사를 하고 저녁 시간에 모두가 모여서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10년 전에 이사 나온 집에 입주할 때 신나 하던 꼬마 두 아이의 모습과 오늘 이사 나오며 짐이 모두 빠진 집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는 참 아쉽더라는 마음을 이야기하였다.

가족이기에 집에 대한 기억은 같은 건지 아이들도 참 좋았다고 한다. 굳이 이사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던 집이라며 굳이 왜 이사했냐며 반문을 한다. (같은 동네,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음에도 느끼는 감정이라면, 역시 집은 크기나 집값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임이 분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 나온 친구와 함께 그곳이 좋았는데 이사를 왜 했나 모른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어쩌면 내 아이에게도 나의 어릴 적 '그리움'으로 남은 집이 생긴 것이리라. 먼 훗날 두 형제가 그 집에 대해 이야기도 나눌 것을 상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사 다음 날 선명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니 이곳도 잘 지낼 것 같다.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달항아리도 준비하고 명태와 명주실도 현관에 걸며 우리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품어줄 것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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