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삶의 길에서 택한 내게 없는 것
오랜 시간 덮어 두었던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한동안 덮어 두었던, 나의 마음 깊은 곳의 책장도 함께 열렸다.
책을 읽고 나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흩어진 생각과 감정이
글을 통해 하나의 파동으로 모일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 닿는 공명이 된다.
나는 책을 늘 좋아했지만,
어느 때는 책조차 효용의 관점으로만 펼쳤다.
마케팅, 경제, 어학, 자기 계발…
그리고 모두에게 인정받은 베스트셀러들.
책을 읽는 시간조차 나를 위한 ‘투자’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소설이 있는 서가 앞에 서본 일은 거의 없었다.
책이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을
그때의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결말을 남기고 덮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요가 지도자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한동안 내려놓았던 소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그 책의 결말이 다시 궁금해졌다.
〈모순〉 양귀자의 장편소설.
안진진의 인생 이야기.
책의 첫 장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뇌한다.
“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이십 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쯤은 자신을 사로잡아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삶을 방관하고 냉소하던 안진진은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서
열렬한 각오를 세워본다.
어리석은 판단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검토를 거치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해야 하는 무엇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마치 하나의 종이처럼 맞닿는 순간.
책의 모든 장면이 한 줄로 이어지는 귀결.
그리고 그것은 제목 그대로,
‘모순’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 체험이 일어난 뒤가 아니면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에 다시 다가가는 모순.
그 모순 때문에 삶은 다시 전진한다.
결혼 역시 선택이다.
하지만 한 번 결혼을 선택하면
그만큼 인생에 성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또 있을까.
내 삶도 어떤 지점에서 둘로 나누라면
결혼 전, 결혼 후.
그 이유는 기댈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과 불행의 양면을 함께 맞닥뜨릴 사람.
동반자이면서도 때로는 경계를 요구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관계.
그녀가 결혼의 선택에 인생일대의 각오를 세운 이유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결국,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이모의 죽음은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라 가르쳐주었지만,
그녀의 선택은 나영규였다.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결국
어떤 종류의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것인지
그 문제 앞에 선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서는 이 모순.”
그녀는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한 걸음 앞으로 밀어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말고,
이미 가진 것 말고,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나만의 결말’을 선택했다.
그것이 모순일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가르침과 다를지라도.
삶은 뻔해 보이는 길 위에서도
누가 걷느냐,
어떤 마음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해석과 결말은 모두 달라진다.
안진진의 삶이 엄마도, 이모도 아닌
또 다른 인생이 된 것처럼.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웠던 이유는
모순의 연속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통해
안진진의 삶을 읽으며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의 가장 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의 양면 사이에
언제나 내가 서 있다는 것을.
퇴사와 복직 사이에서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바라보았다.
인생이 단 한 번 뿐이라면,
그 순간들이 지리멸렬하기보다는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풍부하기를 바랐다.
내 인생이 정말 내 것이라면,
이제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삶은 각양각색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p.s.
그래서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기다려 준 독자분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