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용기

나의 이름이 사트야가 된 이유

by 사트야

요가의 시작은 내가 건강하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몸이 내는 소리를 진통제로 무시했고,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몸이 나아진 것이라 착각했다.

아프면 또 약을 먹었다.


그러나 마흔 즈음, 내 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탈이 날 수도 있겠구나.’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듣지 않고 외면한 결과는 몸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굽은 어깨, 짧아진 호흡, 긴장으로 굳은 몸.

어느 날부터인가 양 어깨에는 파스가 늘 붙어 있었다.


‘건강하지 않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힐을 신었다. 작은 키, 불균형한 체형을 감추고 싶었다.

보이는 겉모습에서부터 나의 불완전함을 감추려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만족은 타인의 인정에서 출발했다.

인정을 향한 욕구는 매 순간 나를 최선을 다하게 했고,

칭찬을 들으면, ‘나는 남보다 잘하고 있다’는 은밀한 자만심이 차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나를 부족하다고 느꼈다.



나는 대화 중 “솔직히 말해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 말은 내게 마음속 깊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였다.


'나의 진실을 혹시라도 믿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안의 진실마저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 말은 나의 솔직함을 드러냈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진짜 솔직함은 말의 포장에 있지 않다.


솔직함이란,

말과 행동의 일관성,

불편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가식 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태도에 있다.


소개한 적 있는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의 8단계 중,

요가의 첫 번째 단계, **야마(Yama)**에는 ‘사트야(Satya, 진실과 정직)’가 포함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언제나 ‘아힘사(Ahimsa, 비폭력)’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진실을 말하고 행동에서 거짓을 피하는 것.

상대를 해치지 않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전하는 지혜.

요가가 말하는 진실은 바로 이런 지혜에 기반한다.



요가 매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내 몸의 불편함을 바라보았다.

아픈 곳을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며,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열었다.


깊은 호흡을 따라가며 서서히 내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한 말이 나를 숨 쉬게 했고,

귀를 열고 타인의 말을 들었다.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내 숨의 통로는 열리고, 더 깊고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사트야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마주하고, 나의 글에 진심을 담아

누군가를 위한 공감과 위로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거의 20년 만에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나의 글에는

'솔직히 말해서'라는 거추장스러운 시작은 필요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의 세상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요즘 푹 빠져있는 게임 세상 이야기를 가끔 나에게 들려준다.

“엄마, 게임에서도 노력하지 않고 높은 등급을 얻는 건 마치 시험에서 갑자기 1등급을 받는 거랑 같아.”

아이는 결과는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공정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불공정한 세상이라고.


아이가 마주할 현실 앞에,

"세상은 아름다워"라는 낙관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요가를 배우는 이유.


나와 타인을, 나와 세상을 둘로 나누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통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내는 연습을 하고 있듯이,

나는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삶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의 소중함,

친구와 나누는 소소한 웃음, 노력으로 얻는 배움의 기쁨이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흐릿해서, 때로는 너무 선명해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 사춘기 아이에게,


나는 어떤 공감과 위로의 말들로, 진심과 진실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

좋은 엄마란 어떤 사람일까.

묻고 또 묻는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잣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어린 시절, 내가 엄마에게 바랬듯이

나도 그렇게 아이의 곁에 있고 싶다.


새로운 학교, 낯선 친구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겪은 일이나 고민을 털어놓을 때,

마음이 꽤나 아픈 순간들이 있다.


나 역시 오늘이 불안하고 내일이 두려운데,

열다섯 살의 아이는 얼마나 더 두려울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커진 너의 등을 안아주는 일,

밥을 차려주는 일

너의 세상을 바라보며, 가까이 곁에 서 있는 일뿐.


그래서 매일 밤 자기 전 간절하게 바라본다.

내일은 아이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손을 내밀고 다가와 웃어주는 친구들이 있기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기를.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나의 진실된 말이, 거짓 없는 행동이

너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라본다.





에필로그]


요즘 들을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는 노래가 있다.

내 마음과 똑같아서.


김윤아의 <going home> 중,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게 자격이 있으니까.”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든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아이와 나누는 행복한 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