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필요가 없는 새들은 건강한걸까?
일 년 내내 달리러 나가면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하루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자연이 좋다. 그래서 밖에서 달리는 걸 좋아한다.
6년 째 밖에서 달리면서 늘 마주치는 것들 중 하나가 새들이다. 그 중 왜가리, 비둘기, 까치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데 왜가리는 물 주변에 머물면서 사람이 다가가면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 버린다. 반면 비둘기나 까치들은 사람이 코앞에 다가가도 날아오를 생각이 없다. 걸어서 자리를 피한다. 웬만해선 날지 않는다.
왜 비둘기나 까치들은 애완동물도 아닌데,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서 도망가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우리가 새들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시각에서 그 아이들이 왜 날아서 도망을 가지 않는지 추측을 해본다.
우선, 야생에서 동물들은 위협을 느낄 때 도망을 간다. 그러니 내가 달리면서 만나는 비둘기나 까치들은 생존의 위협을 경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을 포함해 모든 동물들이 두려움을 경험을 통해서 학습한다. 아마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처음 경험했던 비둘기나 까치들은 사람을 피해서 날아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새들을 사냥하던 시대에는 새들은 사람의 발소리만 들려도 날아올라 도망을 갔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도 새들을 사냥하는 부족들이 있는 곳에서는 새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날아오를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비둘기나 까치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웬만해서 사람을 피해서 날아가지 않는 비둘기나 까치들을 보며 우리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의 석기시대 조상들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감과 모든 신체 기능을 극대화 해야했다. 반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벌레나 야생 동물과 같은 위험 요소들로부터 분리되어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있기에 오감과 다른 신체 기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신체 운동을 하는 대신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날지 않는 새들은 아마도 잘 날던 새들보다 건강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리고 신체 사용이 현저히 줄어든 우리 인간들도 몸의 긴장 대신 정신적인 긴장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직접적인 생존의 위협을 받지는 않지만, 기술로 인해 편리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보장 받는 댓가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우리의 정신이 위협 받고 있다.
숟가락이나 가위 같은 간단한 도구들부터 AI와 사물인터넷 등 최첨단 도구들까지 누리고 사는 우리는 과연 선사시대 조상들보다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새들도 우리도 생존의 위협을 받지는 않지만 날개짓을 하며 날아 올라보면 어떨까?
몸의 기능을 원활히 사용하면 몸도 마음도 단단해 진다. 가만히 한 곳에 웅크리고 있지 말고,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때만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날아올라 높은 곳에서 넓게 바라보면 몸도 원활해지고 생각도 유연해지고 더불어 마음도 더욱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정신적인 불안정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몸을 움직여 우리의 뇌를 깨우고 우리의 건강한 정신을 위한 날개짓을 해보자.
멋지게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