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속도에 맞춰주자
학교에 아이를 맞추지 말고 아이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주면 좋겠다. 그게 힘들면 아이의 속도에라도 맞춰주면 좋겠다.
내가 운영하는 드리밍리더스라는 학원은 빠르고 많은 학습을 강요하는 학원이 아니다. 아이들 각자에 맞는 속도로 느리더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돕자는게 나의 철학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학원에는 읽기를 잘 할 수 있는 친구들 또는 정반대로 학습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이 온다. 그 외에 빠른 효과를 원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우리 학원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아이들 또는 학습 속도가 느려 일반적인 학원의 수업이 버거운 아이들이 우리와 오래 함께 한다.
우리 학원에 5학년이 되어서 온 H라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 몇 번 수업을 해보니 일반적인 아이들과 좀 달랐다. 좀 전에 했던 것도 기억을 잘 하지 못하고 기억과 생각이 연결되지 않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경계선지능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처음에 솔직하게 우리에게 그 사실을 공유하고 도움을 청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자칫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상담을 요청했다.
조심스럽게 H가 기억하고 생각을 확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반적인 학습 진행이 어렵다는 사실도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H의 어머니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털어놓으셨다.
다른 학원에서의 학습은 불가능했지만 우리 학원의 다독은 개별 수업이기에 H의 속도에 맞춰서 진행이 가능했다. H는 다른 친구들과 같은 속도와 강도로 학습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어머니께 절대적으로 아이의 속도로 학습을 진행해야함을 알렸다. 그리고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 소리내어 읽기와 쉬운 단어와 문장의 반복이 필수이며 한 번에 길게하기보다는 매일 꾸준히 낭독할 것을 권유드렸다.
사실 H의 지능 발달에 정체가 온 것을 조금 일찍 3학년 이전에 발견했더라면 뇌의 꾸준한 자극과 신체활동을 통해 지능이 좀 더 발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우리 아이가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리고 상황을 부인하고 싶은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정확한 진단이 지연되기도 한다. 게다가 진단이 되더라도 부모들은 아이가 정상적인 범주라고 여겨지는 교육 환경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 한다.
H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6학년 말 쯤, 어머니께 H를 위해 느린학습자를 위한 대안학교를 알아보시는게 어떠냐고 제안도 해보았다. H외에 다른 형제도 있기에 여건상 H를 대안학교에 보내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러 고민 끝에 일반중학교에 진학한 H는 학교 수업을 전혀 소화해 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안타까움에 H를 수학학원도 논술학원도 보내셨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H가 이해할 수 없는 수업들을 따라가느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H는 학습 능력, 상황인식, 사회성 부분이 모두 낮은 편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인지가 잘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당연히 모두 풀지 못하고 찍어서 낸다. 시험을 친 날은 하소연을 하러 학원에 온다. 자퇴를 하고 싶다고 수시로 얘기한다. H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점점 친구도 줄어들 것이다.
시험을 치고 학원에 오는 날이 아닌데 바로 학원으로 왔다. 자기도 모르는 안좋은 감정을 어디에도 얘기할 수 없어 우리에게 와서 한참 하소연을 하다 갔다. 자기도 모르는 정체 모를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는다. H에게 못하겠을 땐 엄마랑 꼭 의논하라고 얘기해준다. 그리고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나 덧셈 뺄셈 곱셈 등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린다. H의 사고 단계에서는 단순한 것들을 반복해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도록 연습을 해야한다. 그리고 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체활동도 필요하다.
다행히 부모님이 이제는 상황을 완전히 인정하시고 H의 상황에 맞게 조급함을 버리신 것 같다. 그 어느 부모가 자식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있을까? H가 조금씩 나아져서 일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부모님의 바램일 것이다.
꾸준히 반복하고 생각을 계속 연결하는 연습을 해왔다. 오래도록 꿈쩍도 않던 H의 읽기 능력이 좋아졌다. 어버이날 영상편지를 써서 읽는 모습을 어머니께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영어로 편지를 써서 읽는 H의 모습에 감동하셨다. 배우고 돌아서면 잊던 H의 기억력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느린 아이들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많이 느려서 답답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주면 느리더라도 끝까지 갈 수 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 휩쓸리면 느린 아이들의 배움은 멈추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배움은 철저히 아이들의 시간과 속도로 흘러가야 한다.
아이들의 배움은 여러가지 이유로 멈추어버릴 수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와의 소통이 어려워서, 학교 생활이 어려워서, 일하는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해서, 코로나 시기에 인지 자극을 받지 못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배울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배움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