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익숙한 사람과 장소 그렇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마음의 전문가가 아니라 일상이라 말할 수 있는 늘 익숙한 사람과 장소이다. 일상, 늘 익숙한 사람과 장소에 대해서 생각하면 아들 친구 o o 이가 생각난다. 중학교 3년 동안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닌 o o 이에겐 늘 익숙한 사람과 장소가 없었고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느라 시간을 메우기 위해 축구를 했던 아들은 일상에서 늘 익숙한 사람과 장소가 없었다. 마음을 온전히 의지할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상에서 마음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할 마음과 머리를 잃어 갔다.
아들 친구와 아들의 경우뿐 만 아니라, 지난 20년 간 나는 많은 아이들이 마음에 불안함이 있으면 학습의 동기를 잃어버리고 마음과 뇌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사실 학교라는 공간은 활동적인 아이들에게는 답답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아이들마다 특성이 모두 다르고 요즘은 더구나 학교에서의 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 학교 생활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되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중 몇몇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심리검사 과정에서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진단들이 과잉 진단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과잉 진단임을 안 부모들은 멀쩡한 아이를 약을 복용하게 하여 억지로 차분한, 아니 기운이 빠진 아이로 만든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던 20년 전에는 ADHD 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요즘은 아이들의 행동이나 능력에 대해 지나치게 증상으로 진단을 하는 진단이 남용되는 시대라 감히 말해 본다. 몇몇 친구들은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 한글을 제대로 읽기 못하는 상태였다. 입학을 하고 이 친구들 부모들은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다. 댁의 자녀가 난독증이니 치료가 필요하거나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EBS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 10부에서는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뉴질랜드의 공립 학교에는 아이들이 학년 별 읽기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읽기 담당 선생님이 아이의 부족한 읽기 능력을 필요한 수준까지 끌어 올릴 수 있도록 1대1 코칭을 해 준다. 학습에 있어서 필수적인 읽기 능력을 학교에서 담당을 해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학교에서 ADHD나 난독증이라고 판단되는 친구들은 천덕꾸러기처럼 학교를 다니게 되니 아이들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지금 상태는 학교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아도 점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정상적으로 수업을 듣고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나는 구성원들 사이의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따뜻한 의사 소통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맘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학교의 상황이 아이의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가정에서도 부모의 이혼, 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 아이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 나도 일을 하는 엄마였기에 우리 아이들이 집에서 엄마가 돌봐 주는 아이들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우리 부부의 불화도 아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며 더 나은 부모가 되어가겠다고 다짐하며 사는 요즘이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나처럼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는 아주 허다하리라 생각한다. 내 학생 중 아주 사랑스러운 M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본능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아이였는데, 엄마가 직장에 다니셔 새벽에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 거기서 등교를 했었다. 아들이다 보니 경찰이신 아빠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엄하게 다루었고, 아이는 아빠 앞에서 표출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밖에서 표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4학년이었던 M은 물건을 집어 던지고 발로 차고 부서뜨리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버님을 뵙고 말씀드렸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공부가 아니라 안정적인 사랑이니 아버님이 많이 안아 주시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라고. 그 후 아이는 학원은 그만 두었지만, 가끔 지나가는 길에 들러 나를 꼭 안아주고 돌아서곤 했다. 아이들이 마음이 편하고 부모와의 관계가 좋다면 아이들이 당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최고로 자라지 못하더라도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진정한 가치를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 아닐까? 나도 일하는 엄마이다 보니 일하는 엄마들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하고 한 마디, 단 한 번의 행동이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자신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있다. 그러니 일하는 엄마의 일은 용량 초과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일하는 엄마가 주부 역할도, 엄마 역할도, 사회인 역할도 완벽히 해내길 요구한다. 그런 분위기에 쫓기는 엄마는 늘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는 여러 해의 시행 착오를 통해 그 모든 것에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것을 인정하고 가족들과도 터놓고 의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받는 수퍼우먼이기 보다는 모자라지만 남편과 아이들과 의논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족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 나은 방법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편하면 아이의 마음도 편해진다. 그리고 기억하자! 지금 우리 아이의 성장이나 성과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금 사춘기인 우리 아이와 우리가 필요한 것은 건강한 ‘관계’라는 것을! 그렇게 부모와 건강한 관계를 가진 마음이 편안한 아이는 꼭 학교 공부에서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성장시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단단한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불안정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제대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증상들은 짜증으로, 수다로, 폭식으로, 신 음식을 먹는 것으로, 불면증, 과잉행동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봐 오면서 나의 자녀들을 포함해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익숙한 장소의 익숙하고 편안함을 주는 그런 어른. 아이들에게 늘 다정한 눈빛과 말과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우리는 모두 그런 어른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