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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vannah May 08. 2020

26세 세대주

첫 자취 이야기


뙤약볕을 잔뜩 쬔 자동차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었다.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찍고 내 휴대폰과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볼 빨간 사춘기 - 여행’을 틀고 경부선을 내려가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출장이 아니라 부산 바닷가를 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렇게 자위한다. 매일 서울(집)-화성(회사)-천안(출장)을 왕복하는 일을 한 달 반쯤 했을까. 밤 11시 양재역에서 ‘엄정화 - 페스티벌’을 들어도 도무지 힘이 나질 않았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1년 안에 자취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전 다닐만한데요?’라고 자부했거늘 공장에서 틈이 날 때마다 직방을 뒤적거렸다. 융자 없는 전셋집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었다. 기존 계약이 갑자기 파기된 상황이라 계약하고 싶다면 가계약이 아닌 계약금 전체를 입금하라는 것이 아닌가. 제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보지도 않고 천만 원을 입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가서 집을 보기엔 천안에 발이 묶여있는 터였다. 융자도 없고, 원하던 오피스텔에, 집주인은 같은 회사 사람이라니 놓칠 수 없었다. 밤에 찾아뵐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에게 오피스텔 앞에 내려달라고 한 뒤 부리나케 달려갔다. 덤터기라도 쓸까 두려워 자취 경력 있는 연수원 동기 2명도 불렀다. 네이버에서 급하게 얻은 지식들로 수전도 만져보고, 물도 내려보고, 해는 잘 드는지 확인했다. 단칸방의 집을 휘휘 둘러보고 나니 (현관이랄 것도 없는) 현관 입구에서 부동산 아주머니가 돈을 입금하라 신다. "계약서는 안 쓰나요?"하고 여쭤보니 계약서는 다음에 부모님하고 같이 작성하기로 한 것 아니었냐고 하셨다. 아뿔싸, 소통이 제대로 안됐나 보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계약서도 없이 천만 원을 입금하라니 뭔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이었다. 성화에 못 이겨 덜컥 송금하고나니 내가 지금 잘한 일일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넋이 나간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부동산 아주머니가 친필로 가계약서를 써주셨다. 같이 와준 동기들에게 커피 한 잔씩 사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다고 잘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후덥지근한 여름밤, 터덜터덜 회사로 돌아가는 기분이 참 묘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왔다. 이삿짐이 얼마 없어 아빠 차로 금방 다 옮겼다. 퇴근 후 동기들과 독립 축하 파티를 벌인 뒤 불 꺼진 집으로 들어왔다. 나를 반겨주는 이 없는 집은 아직 가구가 안 들어와서인지 공허했다. 바닥에 요를 깔고 눕자 복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고스란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누워 있는 방 바깥에서 소리가 들리니 우리 집 거실에 낯선 이들이 소란을 피우는 기분이었다. 벌떡 일어나 엄마가 꼭 있어야 한다고 고집 부리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설치한 걸쇠를 걸어 잠갔다. 이 물리적인 잠금장치가 주는 안도감은 대단했다. 남의 집에서 자는 듯한 뒤숭숭한 기분 반, 독립 후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 반을 안고 스르르 잠들었다.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전입신고는 엄마의 독촉에 의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확정일자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들고 동사무소에 가서 민증에 새로운 주소를 붙였다. 스물여섯 살, 나는 세대주가 되었다. 빠르면 스무 살에도 상경하여 혼자 사는 친구들에 비하면 늦은 편이었다. 대학생 때는 밤새 술 마시는 자취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이제는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회사 때문인지 내가 성숙해서인지 그럴 마음이 들진 않았다. 따땃한 엄마 밥과 부모님의 보살핌을 뒤로한 채 뛰쳐나온 야생은 현실이었다. 교도소 같은 복도, 닭장 같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 매주 토하는 옆집 여자, 월마다 날아오는 관리비 통지서, 다달이 나가는 대출. 혼자서든 둘이 되어서든 누구나 하게 되는 독립은 참 달면서도 쓰다. 자유와 함께 날아온 책임은 그 자체로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걷게 된 아이는 더 많은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 넘어지고 울음을 터뜨려버릴 때도 있겠지만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도 함께 자라겠지. 오늘도 무언가 게워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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