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엽다고?
한때 빈티지 캠코더에 빠져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내내 소니 SR46을 들고다니며 친구들을 찍었다.
(2008년에 출시되었으니 거의 20년된 구형모델이다)
이 당시 친구들과 페스티벌을 같이 간적이 있다.
이때도 페스티벌을 구경한다기보다 혼자 열심히 친구들을 찍었고,
친구들끼리 얘기하는 와중에도 혼자 찍은 동영상을 돌려보며 낄낄 거리며 웃고있었다.
그러자 한 동생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왜 쳐다보냐고 물어보자
하는 말이, "언니,. 왜 이렇게 귀엽죠?" 였다.
참고로 나는 귀여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오히려 '기계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을정도로 무뚝뚝한 편이다.
얼굴도 귀염상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차가워보인다', '말걸기 무섭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친구는 (심지어 동생이다.) 언니인 나에게 왜 귀엽다는 말을 했을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라 당황하며
"..? 뭐가 귀엽다는 거야...?"라고 물어보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죄송해요, 무례한가? 사람이 좀 순수해보인다고 해야되나.. 그런게 귀여운거 같아요."
보통 아기나 강아지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귀여움을 느낀다. 이는 외형적인 특성에서 오는 귀여움이다. 하지만 때때로 외형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에게 귀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상대가 화를 내거나 심지어 욕을 하려는 순간에도 이상하게 상대가 귀여워 보였던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엔 화보다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이건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또 언제 우리는 누군가를 귀엽다고 느낄까? 그것은 아마도 '순수성'을 보았을 때가 아닐까. 성인이 된 이후로는 무언가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이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누군가가 순수하게 한 가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귀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동생이 나에게 귀엽다고 한 이유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친구들이 옆에서 말을 하던말던 촬영한 영상을 보며 혼자 낄낄거리며 웃는 모습이 그녀에게는 순수해 보였던 것이 아닐까.
순수성은 그 사람만의 독특한 귀여움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어린아이에게서 느끼는 귀여움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이다. 그렇기에 나이와 무관하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것에 몰입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귀여움이란 단순히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돌아보면 나 역시 성인이 된 누군가를 귀엽다고 느낀 순간은, 그 사람의 애교스러운 말투 같은 것이 아니라 순수함이 언뜻 비칠 때였다. 장난을 쳤을 때 부끄러워 굳어지는 표정,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태도, 손익을 따지지 않고 오롯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귀엽다’고 느끼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현실적이 되고, 계산적이 된다. 그렇게 순수한 열정을 잃어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무런 계산 없이 한 가지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오히려 그 모습에서 귀여움을 발견한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이가 들어도 끝까지 순수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좋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서슴없이 빠져들 줄 아는 어쩌면 '애'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 너무 귀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