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Feb 17. 2021

눈, 그 순간 / 이루시엔

눈(雪)

  한쪽 턱을 괴고 수업을 듣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가까스로 졸린 눈을 부여잡고 있다가 눈이 내리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눈이 온다면서 운동장에 나가자고 한다. 나가는 게 귀찮은 아이들은 교복만 입어 추운데도 교실 창을 활짝 열고 손을 밖에다가 몇 번 휘적이고 있다. 그러다보면 회색 교복 마이 위로 눈송이 몇 개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친구들 눈가에 설렘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굳이 심드렁한 체하곤 했다. 한 조각 중2병에 걸린 나는 “눈이 오는 게 뭐가 좋아, 길바닥이나 얼어서 미끄럽기나 하지”라는 말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내 말 한마디로 폭닥폭닥한 친구들 마음이 어째 가라앉겠냐마는 말이다. 그때는 그게 쿨함이고 멋있음인 줄 알았다.


  속으로는 눈이 오면 괜히 설레는 건 또래들과 같으면서도 어른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그렇게 어른인 척했다. 다행히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내 손목을 낚아채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던 친구들 탓에 같이 눈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어른이나 하는 말을 따라 하고 싶었을까. 뭔가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는 게 세상을 똑바로 보고 있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현명하게 살피는 느낌이었던 듯싶다. 한두번 겉치레처럼 던지던 말은 어느새 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가슴 속에 설레는 일이 있어도 ‘곧 끝날 것’이라면서 비관적인 생각으로 설렘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일은 짧게, 싫은 일은 길게 가져가는 게 익숙해졌다.


  좋은 기사를 써내도 ‘하루짜리인데 뭐’, 맛있는 것을 먹어도 ‘살이나 찌지 뭐’, 일요일이 정말 재밌어도 ‘내일 월요일인데 뭐’, 연애를 시작해도 ‘언젠간 헤어질 텐데 뭐’가 습관이 됐다. 비관적인 생각이 솟아오르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총량도 같이 작아지곤 했다.


  더 무서운 건 남에게 비관을 옮긴다는 거다. 걱정해서 튀어나온 기우 덕에 행복해하고 즐거워야 할 나의 주변인도 덩달아 기우에 잠식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요즘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요즘은 더 입을 다물고 비관적인 말을 습관적으로라도 안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비관적인 기우가 어느 정도 맞았을 때는 봇물 터지듯 또 쏟아지긴 하지만, 회의적인 상념에 그만 사로잡히려고 한다.


  삼 주 전, 서울에 또다시 함박눈이 내렸다. 삼십대가 되어 맞는 큰 눈에 이제는 정말 출근 걱정을 하며 “길바닥 미끄러워져서 어떻게 하냐”는 ‘찐’푸념이 나와버렸지만 행동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중학교 때 안해본 것들을 마음껏 즐기려는 무의식이 나와서였을까. 아니면 순간을 오로지 즐거움으로만 하나로만 느꼈던 어렸을 적이 떠올라서였을까는 모르지만 우선 맨손으로 눈을 한 움큼 집었다. 눈을 굴리고 굴려 나름대로 중간 크기 이상은 되는 눈사람을 다 만들었을 때는 이미 손이 빨갛게 얼어버린 후였다. 만든 눈사람을 다른 사람도 잘 보아주길 바라서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이사시키기도 했다. 춥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서는 땀이 났다.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사람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만끽했다. 초등학교 1학년 그림일기에 나올 법한 말이지만 ‘정말 즐거웠다.’


  괜한 걱정과 비관적인 언행은 잠시 넣어두고 즐거운 순간을 오로지 느끼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그 순간에 몰입하는 것. 그토록 쉬웠던 것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어려워졌나. 그리고 또 오늘 눈이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로 스타터에게 바치는 핑계 / 이루시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