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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Mar 18. 2021

내 인생의 OST / 이루시엔

플레이리스트

  2년 전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애인과의 추억으로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어느 날 옛 가수의 카세트테이프와 카세트가 들어 있는 상자를 받게 된다. 버스에서 이내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본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어라 눈을 떠보니 1998년이다. 27살이었던 여자는 갑자기 고3으로 변해있다. 한술 더 떠 눈앞에는 죽은 애인이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애인 이름을 부르며 와락 안겨보지만 이상하다. 자기 이름은 그 이름이 아니란다. 여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그리고 죽은 애인을 되살리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속 노래를 타고 2019년에서 1998년으로 건너간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想见你)’에는 “쏘이 쟌스 짱니 옌징 비러 치라이”로 시작되는 우바이의 노래 ‘라스트 댄스(last dance)’가 서른 번도 넘게 나온다. 여자의 카세트테이프 노래가 바로 라스트 댄스다. 청량한 여름 배경과 함께 주인공들이 추억을 만들 때마다 나온 이 노래 덕에 옛 중국 가요는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아련함이 되어 마음 한 켠 자리 잡았을 것이다. 드라마는 끝났어도 노래를 듣는 그 순간만은 드라마 장면을 계속 이어 붙이곤 한다.


  음악은 그 순간의 기억과 감정,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다. 인기있는 드라마 OST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성시경의 ‘너는 나의 봄이다’를 들으면 길라임과 김주원의 사랑 이야기가 떠오르고,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를 들으면 임진주와 손범수의 티키타카와 설렘이 느껴진다.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노래를 들었을 때의 장면과 생각이 스치게 된다. 노래는 곧 추억을 꺼내는 매개체가 된다.


  마음에 드는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집어넣다 보면 노래들이 쭉 쌓이게 된다. 가끔 플레이리스트 속 오래된 노래부터 꺼내어 들어볼 때가 있다. 그럼 신기하게도 내가 언제 그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는지, 이 노래를 왜 플레이리스트에 집어 넣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넣었고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누구를 생각하며 들었던 노래인지까지 순식간에 떠오른다. 듣는 일기를 켜켜이 쌓은 기분이다. 신기하게 그때의 공기마저 스친다.


  the chainsmokers의 ‘paris’, lolo zouai의 ‘brooklyn love’와 ‘caffeine’를 들으면 2019년의 파리, 니스 여행이 생각난다. 파리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니스에서 관광지로 이동할 때마다 버스를 타고 동생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이 노래들을 줄곧 들었다. 그때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들었지만 여행이 끝난 다음 이 노래를 들었더니 내 머리와 감정은 파리와 니스 한복판으로 옮겨져 있었다. 배우 정유미는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여행지에 도착하면 새로운 향수를 사서 여행 내내 그 향수만 뿌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그 향만 맡아도 그때의 여행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단다. 내게 이 노래들은 정유미의 향수와 같은 셈이다.


  그런가 하면 투애니원, 빅뱅, 소녀시대, 티아라, 2pm, 휘성, 거미 노래들은 순식간에 날 고등학교 자습실로 이끈다. 이제는 찾아볼 수도 없는 PMP에 이어폰을 꽂고 멜론 탑 100을 돌려 틀어가며 수학문제를 풀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악동뮤지션의 ‘200%’와 ‘give love’는 지독히도 출근하기 힘들었던 인턴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힘에 부쳐서 일부러 밝은 음악을 틀었다. 그 당시 관심 있어 하던 사람이 내게 관심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주술적인 희망을 담아 give love를 줄기차게 들었던 것도 있다.


  이렇게 노래를 하나씩 틀다 보면, 노래 하나하나가 다 내 인생 속 OST다. 하나도 허투루 버릴 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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