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Mar 20. 2021

시간을 거슬러 / 우드수탁

플레이리스트

  유튜브의 중간 광고를 보지 않으려는 날갯짓이 만들어 낸 파동인가. 아니면 추억 속 노래만을 찾아 흥얼거리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어느 새 플레이리스트엔 추억이 깃들어 있거나 그 추억과 비슷한 향이 나는 노래들로 가득 찼다.


  실시간 랭킹을 보여주는 스트리밍 앱에서 유튜브 뮤직으로 갈아타면서 아무래도 최신 음악과 멀어진 것도 한 몫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아탄 데에는 최신 음악 순위에 대한 이유 있는 반항심도 있었다. BTS도, 오마이걸도 너무 좋지만 꿈쩍하지 않는 순위의 장벽과 그 벽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넘는 일부 논란은 차갑게 등을 밀어 주었다.


  

 그렇게 빠져버린 유튜브 뮤직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심 100km 바다였다. 간만에 좋아하는 취향의 노래들을 디깅(Digging)하고, 하트를 눌러 ‘좋아요 표시한 동영상’에 모시곤 뿌듯함에 쾌감을 느꼈다. ‘이런 노래를 몰랐다니!’, ‘이 노래랑 또 비슷한 거 없나’를 반복하며 ‘SOLE(쏠)’, ‘새소년’, ‘베란다 프로젝트’, ‘폴카이트’ 등 꽤나 플레이리스트 풀이 넓어졌다. 아니,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전에는 몰랐던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고, 듣지 않던 취향의 노래도 리스트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싸이감성이 물씬대는 ‘이수영’, ‘GOD’, ‘동방신기’, ‘러브홀릭’, ‘MC몽’, ‘클래지콰이’ 등 90년대 가수들의 지분이 대주주 급이었다. 누가 봐도 ‘아 이 플레이리스트 주인 90년대생이네’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그런 리스트.


문방구에서 한 번은 사 본 추억의 주름 부채

 

 언제부턴가 요즘 노래에 흥이 나지 않았다. 이성의 선에서 ‘오, 이 노래 좋은데?’까지는 가도 어깨를 둠칫, 마음을 찌릿하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GOD의 ‘촛불하나’를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수영’의 ‘덩그러니’를 들으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엊그제는 엄정화의 ‘초대’를 듣다가 박수에 맞춰 발을 구르고 있었다.(어느 파트인지 아시는 분 환영합니다) 심지어 ‘초대’는 1998년에 발매한 곡으로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본인에게 그리 추억이 깃든 노래도 아니다.


솔직히 90년대라면 다 아는 '소주 한 잔' 뮤비


  그럼에도 90년대부터 2000년대 노래에 반응하는 이유는 노래에 담긴 시간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엔 노래를 몇 번이고 곱씹고, 오롯이 집중해 그 감상의 깊이가 달랐다. 요즘 노래는 그저 일상 속 BGM이지만 어릴 땐 노래를 듣기 위해 걸었고, 가사는 무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소설이 되어 주었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들으며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는 실연한 미래의 나’를 상상했으니까. (다들 한 번쯤 했잖아요)


  어느 새 노랫말은 현실이 되고, 상상보다 더 쓰리고 차가워 EQ미달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오로지 귀 두 개로 신나고, 또 눈물짓던 시간이 꾹꾹 눌러 담긴 노래들엔 여지없이 EQ폭발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다.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는 그 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고 또 그리운지를 보여주는 마음의 소리가 되어 오늘도 13년전 그 노래를 재생시킨다.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러브홀릭스, Butterfly)

국가대표 마지막 장면까지 떠올려줘야 인정


매거진의 이전글 성냥팔이 소녀 / 우드수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