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 우드수탁

플레이리스트

by 글리

유튜브의 중간 광고를 보지 않으려는 날갯짓이 만들어 낸 파동인가. 아니면 추억 속 노래만을 찾아 흥얼거리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어느 새 플레이리스트엔 추억이 깃들어 있거나 그 추억과 비슷한 향이 나는 노래들로 가득 찼다.


실시간 랭킹을 보여주는 스트리밍 앱에서 유튜브 뮤직으로 갈아타면서 아무래도 최신 음악과 멀어진 것도 한 몫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아탄 데에는 최신 음악 순위에 대한 이유 있는 반항심도 있었다. BTS도, 오마이걸도 너무 좋지만 꿈쩍하지 않는 순위의 장벽과 그 벽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넘는 일부 논란은 차갑게 등을 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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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빠져버린 유튜브 뮤직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심 100km 바다였다. 간만에 좋아하는 취향의 노래들을 디깅(Digging)하고, 하트를 눌러 ‘좋아요 표시한 동영상’에 모시곤 뿌듯함에 쾌감을 느꼈다. ‘이런 노래를 몰랐다니!’, ‘이 노래랑 또 비슷한 거 없나’를 반복하며 ‘SOLE(쏠)’, ‘새소년’, ‘베란다 프로젝트’, ‘폴카이트’ 등 꽤나 플레이리스트 풀이 넓어졌다. 아니,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전에는 몰랐던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고, 듣지 않던 취향의 노래도 리스트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싸이감성이 물씬대는 ‘이수영’, ‘GOD’, ‘동방신기’, ‘러브홀릭’, ‘MC몽’, ‘클래지콰이’ 등 90년대 가수들의 지분이 대주주 급이었다. 누가 봐도 ‘아 이 플레이리스트 주인 90년대생이네’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그런 리스트.


SimilarEmbarrassedFireant-size_restricted.gif 문방구에서 한 번은 사 본 추억의 주름 부채


언제부턴가 요즘 노래에 흥이 나지 않았다. 이성의 선에서 ‘오, 이 노래 좋은데?’까지는 가도 어깨를 둠칫, 마음을 찌릿하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GOD의 ‘촛불하나’를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수영’의 ‘덩그러니’를 들으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엊그제는 엄정화의 ‘초대’를 듣다가 박수에 맞춰 발을 구르고 있었다.(어느 파트인지 아시는 분 환영합니다) 심지어 ‘초대’는 1998년에 발매한 곡으로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본인에게 그리 추억이 깃든 노래도 아니다.


7235ac0b306e3a09b72f2d2b8c6c8e93.jpg 솔직히 90년대라면 다 아는 '소주 한 잔' 뮤비


그럼에도 90년대부터 2000년대 노래에 반응하는 이유는 노래에 담긴 시간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엔 노래를 몇 번이고 곱씹고, 오롯이 집중해 그 감상의 깊이가 달랐다. 요즘 노래는 그저 일상 속 BGM이지만 어릴 땐 노래를 듣기 위해 걸었고, 가사는 무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소설이 되어 주었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들으며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는 실연한 미래의 나’를 상상했으니까. (다들 한 번쯤 했잖아요)


어느 새 노랫말은 현실이 되고, 상상보다 더 쓰리고 차가워 EQ미달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오로지 귀 두 개로 신나고, 또 눈물짓던 시간이 꾹꾹 눌러 담긴 노래들엔 여지없이 EQ폭발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다.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는 그 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고 또 그리운지를 보여주는 마음의 소리가 되어 오늘도 13년전 그 노래를 재생시킨다.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러브홀릭스, Butterfly)

KipPCe84T0mS636524892769077157.jpg 국가대표 마지막 장면까지 떠올려줘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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