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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pr 10. 2021

한강 팔레트 / 우드수탁

공간

  파리엔 센느강, 런던엔 템스강이 있듯이 서울에는 한강이 있다. 도시를 가로질러 구역을 나누고,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적으로 표현할 때 함께 등장하는 곳. 서울을 지난다면 도저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큰 축인 한강은 서울의 풍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풍경은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 속 한 자락에 로맨틱하게, 어쩌면 냉소적이게 담겨있을 것이다. 본인 또한 한강은 시간과 사람에 따라 무수한 색깔로 담겨있는 공간이다.


  

 첫 인상은 63빌딩에서의 한강이었다. 아마 한 8살 즈음이었을까. 부모님의 손을 잡고 63빌딩을 놀러 갔다. 그렇게 높은 건물은 처음이었고, 그 곳에서 바라본 한강과 서울의 풍경은 과히 압도적이었다. 태어나서 본 가장 높은 곳이 그저 동네 뒷산이었던 어린아이에겐 너무나 생경한 장면 속에서 한강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너무나 깊고 넓어서 마치 [왕좌의게임]에 ‘The Wall’같이 웅장했다. 그렇게 한강은 ‘괴물’이라는 영화에 충분히 이입되고 남을 정도로 신비롭고 웅장한 공간으로 담겼다.



  대학이 서울에 있던 탓에 반서울살이를 시작한 20대 초반, 한강은 벚꽃과 폭죽놀이로 버무려져 로맨틱한 공간으로 담기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벚꽃놀이로 간 여의도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웅장하던 모습은 옅어지고, 63빌딩은 어느새 꽤나 낡아 있었다. 한강은 봄에 맞춰 온갖 커플, 솜사탕, 벚꽃으로 분홍빛을 뿜어냈다. 후에 친구들과 공강을 맞춰 피크닉을 가고, 청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도 한강은 그저 싱그럽고 따뜻하게 담겼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한강은 청춘의 색깔로 칠해졌다.


취준생이라면 한 번쯤 올려다보는 고층빌딩


  그저 희망과 긍정의 디즈니같던 대학생 시절이 지나고, 혹독한 현실 속 취준생 시절의 한강은 씁쓸했다. 대학생 때와 다를 거 없는 멤버로 향한 한강 피크닉이었는데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백수였기에 조금은 일찍 도착해 거닐던 여의도는 이 많은 빌딩 속 내 자리 하나 없다니’ 라는 마음에 상대적 박탈감을 쏟아냈다. 한강도 왜인지 성공한 어른을 위한 휴식처로 느껴져 마치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와있는 이방인의 기분을 느꼈다. 청춘은 끝나고 성숙하지도 못한 그 어딘가에서 방황했기에 한강은 마치 모두 가졌는데 스스로만 가지지 못한 성숙한 어른의 풍경이었다.


가깝고도 먼 한강

  

 다행히 서울은 넓었고, 자리를 잡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가까운 서울로 본적을 옮기고 독립하면서 취준생 시절 그리던 직장인이 되었다. 당시 여유롭고 어른스러워 보이던 사람의 한 명이 되었는데 한강의 풍경은 또 달라져 있었다. 서울 생활은 생각보다 쓸쓸했고, 그만큼 여유롭지도 못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바라보는 일이 더 많았고, 가끔 저녁 런닝을 하며 보는 한강의 풍경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왠지 모를 벅차오르는 감동과 동시에 여전히 이방인으로 서있는 씁쓸함을 데려왔다. 언제라도 나를 밀어내고 이 곳은 너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만 같다. 어릴 적 신비롭게만 느껴지던 한강과 분명 훨씬 가까워졌는데도 오히려 더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저 굵은 물줄기일 뿐인 한강과 사람은 한 순간, 어떤 지점에서 마주쳐 그렇게 물들어간다. 웅장한 도시의 명소를 지나 가끔은 따뜻하게 가끔은 한없이 차가운 한강은 본인의 인생 그 흐름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징표, 건강한 취미 활동, 지독한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잊지 못할 순간으로 물들이고 있을 한강. 후에 스스로가 한강을 어떻게 간직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높은 명도에 부드러운 채도로 칠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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