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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May 07. 2021

혼모노 혼코노 / 우드수탁

비밀의 방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하는 물음들이 있다. 어디에 사는 지, 주말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혹은 취미가 무엇인지. 꽤나 가볍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 되기도 하며 다른 주제를 끌어오는 밧줄이 된다. 하지만 이 중에 차마 묻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는데, 나에겐 그 중 하나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다. 어쩌면 누군가는 심플하게 ‘운동’, ‘여행’이 그 답이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 스트레스는 가장 내밀한 행동들로 해소된다. 

 단 한가지 행동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는 않으니 내밀의 농도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옅은 비밀의 방을 열어보자면 ‘혼코노’이다. 혼코노를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 해석을 덧붙이자면, 혼자 코인노래방가서 (가창력 따위 상관없이) 노래 부르기가 된다. 듣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부르는 것도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정기적으로 가고 있는데 기본 10곡은 예약을 하고 들어가 최근 들었던 노래부터 TOP100 뒤부터 차근차근 타고 올라가 추억의 노래까지 섭렵한다. 

학생 때도 친구들과 노래방은 갔지만, 혼자 간 적은 없었고 그저 친구들과의 나들이 코스 중 하나였다. 당시엔 스트레스 해소보다는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 갈 곳 없는 10대 청소년의 건전한 놀이 장소였다. 물론 친한 친구들과 함께할 때도 혼자인 것과 다름없이 자유롭지만, 아무래도 노래방 안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있기에 무작정 편하지는 않았다. 다들 시간제 노래방에서의 통용되는 규칙쯤은 알고 있을거라 믿는다. 1) 왠만한 곡 아니면 2절은 생략 2) 간주를 듣는 것은 사치 3) 연달아 3곡 예약은 콘서트 실력 아니면 불가.. 등 이러저러한 예의에 조금은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반면 혼코노는 소소하다 못해 미세한 사치를 부리면서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칸칸이 나뉘어져 혼자 쓰기에 부담스러운 느낌도 없고, 한 소절만 부르고도 내키지 않으면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곡도 내 곡! 익명성도 보장되니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곡부터 신의 가창력이 필요한 곡도 인간으로 넘볼 수 있다. 특히 목을 죽이는 곡을 부르는데 가끔 목이 왜 나한테 화풀이하냐는 마음이 전달될 정도다. 그렇게 9곡에서 15곡 정도를 부르면 급격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며 “음…충분했어” 하고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게 된다. 


 가끔 혼자 코인노래방에서 10곡 가량을 부른다고 하면 진짜 혼자 다 부르는 게 맞냐는 질문이 되돌아오곤 하는데, 노래 부르기에 진심이기 보다는 소리지르기 좋은 상황극에 가깝다. 어쩌면 혼자 소리지르기에 진심인 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자유로운 ‘혼자’와 좋아하는 ‘노래’가 합쳐진 공간에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가사에 이입하다보면 어느새 본캐의 스트레스 따위는 부캐 정도의 영향력으로 남아있게 된다. 생각해보니 혼코노 안 한지 꽤 된 것 같으니 곧 마스크와 4000원을 쥐어 들고 근처에서 고함 한 바탕을 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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