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
최근에 혼자 살던 전셋집을 떠나 친구와 함께 사는 월세집으로 이사를 했다. 성인이 된 이후 가족을 제외하고 누구와 함께 살아본 적 없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특히 본인의 경우 그 ‘누구’가 친구이기에 이후 관계도 배팅에 거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한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 혼자 누리는 비밀의 방도 조금은 좁아지겠지.
그럼에도 살던 집에 나와 이사를 결정한 데에는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혼자 지내니 너무 스스로를 방치한다가 그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는 작은 집이 답답해서. 회사와 거리가 조금(한 10분정도) 가까워진 것도 한 몫 했다.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로 이사를 결정했지만 이후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월세를 아껴 투자나 할걸’, ‘혼자 잘 지내는 건 결국 의지 차이 아닌가’ 등 지금의 선택이 틀렸었다고 혼자 궁시렁 거릴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고민을 들을 때나, 스스로 꽤나 신중한 선택을 할 때 항상 되뇌던 말이 있다.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하자”. 연인과의 다툼 중에 내뱉는 말, 야식이 너무 먹고 싶은 야심한 저녁, 취업준비를 할 때 등 약간 귀찮거나 혹은 본능이 앞지르는 순간에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되뇌곤했다. (물론 본능이 이성을 비웃고 완승한 적도 많았지만…) 사실 명백하게 옳은 선택과 옳지 않은 선택이 있는 경우에 이 문장은 효과적이다.
사실 그 문장을 되새김에는 어느 정도 본인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초중고대의 과정을 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걸었고, 공부와 성적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한 것에 목매다보니 그 결과가 가늠하기 어렵지 않았다. 또한 엄청난 합리화 메커니즘을 가져서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점을 (어떻게든) 뽑아내 지나갔다.
그런데 살다 보니 후회는 남더라. 아무리 합리화를 해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생기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지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이 부러운 순간이 생겼다. 게다가 스스로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선택의 갈랫길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그 누구도 이 방향이 정답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후회하지 않을 거라 선택한 길 너머에는 가지 않은 길이 꽃길이 되어 펼쳐졌다. 결국 후회는 남는다. 아무리 후회하지 않으려 몸부림쳐도 결국 가지 못한 길은 꽃길이요, 내가 걷는 길은 돌길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는다면 이제 정답은 하나가 아닐까. ‘진심’. 그 순간에 마음이 다하는 길로 걷는다면 후회가 남는다해도 미련은 덜할 것이다. 그 순간 최선을 다했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니까. 이제 ‘후회’가 아닌, ‘진심’으로 선택을 저울질한다. 진짜 마음이 향하는 저울에 무게를 싣고 행여 그 저울이 나중에 후회로 가벼워지더라도 그 순간엔 분명 옳은 선택이었으리라 믿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어쩌면 인생 면면을 보여주는 한 문장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지금은 맞고 나중에 틀릴지라도 지금, 본인이 숨쉬고 있는 이 순간에 맞다고 결심했다면 그 길이 그렇게 틀리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