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May 08. 2021

당신의 비밀은 궁금하지 않다 / 박브이

비밀의 방

  긴장감이 극에 달한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 여러 인물 각자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사연이 한 사건으로 모인다. 여태껏 숨겨져 있던 '진실'이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시청자를 포함한 모두가 공유하게 된다.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하던 것 자체의 내용과 그것을 알고 싶어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감춰져왔던 시간에 비례해 탄로의 파괴력이 결정된다. 비단 미스테리를 잔뜩 품은 몇몇 드라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의 어느 순간 순간에서 무언가가 드러나거나 밝혀졌을 때, 일종의 놀라움과 함께 경악하거나 환호하며 그것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나른다. 우리들은 아무래도 비밀, 정확히는 비밀이었던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비밀이란 모름지기 어떤 일이나 이야기의 당사자가 그것을 숨기려 했을 때 탄생하고,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때에 비로소 유지된다. 무언가가 비밀인 상태에서는 그런 비밀이 있다는 것 조차 다른 사람은 알 수 없고, 그것이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떠한 계기와 경로를 통해서든 비밀로 하고 있던 것이 남에게 밝혀진 순간, 그것은 더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비밀'이었던'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결코 비밀을 나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건 비밀인데'라는 운을 띄우고 이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그 순간 비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다. 원래 있던 비밀을 공유했다기보다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는 새로운 비밀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마저도 곧 비밀이 아니게 되겠지만. 비밀은 비밀로서 생겨나 비밀이 아니게 될 때까지 그 존재마저 비밀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비밀인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성질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이 간직하고 있던 것을 고백이라는 말로 꺼내 보여주는가 하면, 관심이라는 말로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을 굳이 엿보려고 하기도 하니 말이다. 무언가를 감춘다거나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는 데서 오는 찝찝함 역시 비밀을 해소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데 한 몫 한다. 여러 겹으로 둘러 쌓여 있던 신비로움을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그것을 마침내 해체하였을 때면 쾌감마저 느껴진다. 거기에 스스로를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진실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소속감까지 더해지면 투명한 관계 속의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고 달콤하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스럽지 않다. 오히려 비밀인 채로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거짓을 내포하지 않는다. 때문에 비밀을 가진다는 것은 그의 솔직함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남에게도 그런 영역이 있음을 뜻한다. 나는 타인이, 타인 역시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영역은 완전히 겹쳐질 수 없다. 오히려 이 영역이야말로 자신과 타인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비밀을 가지고, 타인의 비밀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서로만의 영역에 대한 존중이다. 때문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서는 고집보다는 조심스러움을, 굳이 묻지 않는 것에서는 무관심보다는 배려를 읽는 편이 좋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비밀이 궁금하지 않다. 자, 이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씨는 사람으로 쓴다 / 박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