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Jun 11. 2021

잊을 수 없는 불청객 / 이루시엔

이야기가 있는 15초

  광고는 항상 불청객이었다. 무엇이든 수익화된 세상에서 돈을 내면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달콤한 제안이 생겼고, 바로 결제해 제안에 응했다. 덕분에 요즘은 굳이 찾아보지 않는 이상 광고를 볼 일이 없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날도 광고를 볼 생각은 아니었다. 이 영상 저 영상 클릭하고 있을 때쯤, 귀여운 아이가 입술에 립스틱을 막 칠해놓은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4~5분 정도 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아이는 엄마의 화장대를 망가뜨려 놓고 립스틱을 다 부서뜨려놨으면서 태연하게 “예뻐?”라고 묻는다. 아이가 계속 사고를 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여성은 “엄마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실감한다”며 고된 육아를 이어갔다.


  아이는 엄마와 시장을 가기로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나선 아이는 다짜고짜 엄마한테 호떡을 사러 가자고 조른다. 엄마는 “호떡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사러 가자고 하느냐며 먼저 반찬거리를 둘러봤고, 반찬을 사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없어졌다. 헐레벌떡 아이를 찾아 나선 엄마는 호떡을 사러 가자던 아이의 말이 떠올라 황급히 호떡 파는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봤냐고 물었다. 호떡 상인이 가리킨 곳에는 시장 귀퉁이에서 호떡을 들고 쪼그려 앉은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채근했다. “진짜 속상하게 왜 이러느냐, 언제부터 이런 거 좋아했냐”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힘듦을 쏟아냈다. 그리고 카메라가 비춘 건 아이가 아닌 중년 여성이었다. “호떡 네가 좋아하지 않냐, 학교 갈 때 챙겨주려고 했다”며 말하는 중년 여성은 젊은 엄마의 엄마였다. 치매를 앓고 있었다. “학교는 자꾸 누가 간다는 거냐”며 속상함에 소리치던 젊은 엄마는 이내 “미안하다”며 눈물을 떨궜다.


  “저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치매 공익 광고였다. 이 문구를 보고 몇 분 가량을 내리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은 치매 환자 부양가족이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는 그로부터 3년 전 뇌출혈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신 후 점점 기억을 잃으셨다.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을 수 있다는 조바심에 일주일마다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할머니의 기억을 앗아갔다. 


  장손녀가 취직해 좋아하시던 모습이 선한데, 할머니 기억 속 난 언제나 대학생이었다. 동생이 대학에 합격해 같이 병실을 쓰던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작은 손녀가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붙었다”고 자랑을 하셨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대학에 붙은 지 조차 모르셨다. 우리 이름 한자 한자를 떠올리는 데에 10분이 넘게 걸리는 할머니를 보면서 화장실에서 숨죽여 한참을 울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엄마가 이제는 나한테 효도 받고 싶어서 이러신가 보다”며 애써 웃어 보였디. 할머니는 기억을 놓으시면서도 우리 생일은 또 기억했다. “생일 선물로 준비했다”고 힘들게 입을 떼시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5만원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광고 속 중년 여성과 할머니가 계속 겹친다. 광고 영상 댓글에는 치매 가족 이야기가 넘쳤다. 치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고백부터 힘들어서 같이 죽고 싶다는 글까지 다양했다. 아마 이 공익광고가 나에게 그랬듯,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다른 이들에게도 삶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 어떤 것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5분 정도 되는 광고 영상으로 누군가를 울게도 또 그 누군가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건 어쩌면 광고만이 가진 매력일 지도 모른다. 내게 이 광고가 그랬듯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 이루시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