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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n 26. 2021

내'픽'하이 / 이루시엔

인생의 신스틸러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었던 중학교 무렵, 에픽하이 노래를 제대로 처음 들었다. 조용한 밤에 켠 MP3에서 흘러나오는 에픽하이의 유려한 가사에 매혹됐다. 팬(Fan)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의 환호성에 파묻힌 내 미친 사랑의 속삭임’이라는 가사를 듣자마자 괜히 좋았다. 과장해서 그 시절 중학생에게는 에픽하이 가사가 세련되지만 담담한, 사회 철학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처럼 느껴졌다. 


  그전까지 에픽하이라는 그룹을 티비 음악 채널에 간간이 등장하는 왁자지껄한 남자 세 명이 있는 그룹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만든 음악이 내 인생의 신스틸러가 될 줄이야. 


  지금까지 에픽하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꼬박꼬박 듣고 있다. 물론 가사도 빠짐없이 다 본다. 벌써 15년도 더 넘은 버릇이다. 이 버릇은 이제 에픽하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노래면 무조건 가사를 한 번씩은 검색해서 본 다음에 노래를 들어야 하는 일종의 의식이 됐다. 바꾸기 전 핸드폰 사진첩에는 마음에 드는 가사만을 캡처해서 따로 모아두는 폴더가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단연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던 가사 캡처는 에픽하이 가사의 90% 이상을 맡고 있는 타블로의 노래였다. ‘내 불행의 반을 떼어가길 바래서 너의 반쪽이 된 건 아닌데.’


  에픽하이 가사에 빠져들수록 글쓰기에 관한 환상이 피어났다. 나도 언젠간 타블로와 같은 가사를 적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원대한 포부와 함께 일상생활에서도 꽂힌 모든 문장을 뜯고 씹고 맛봤다. 소화가 제대로 안 된 터인지, 타블로와 같은 가사 센스는커녕 내가 사모했던 모든 문장의 발밑에도 닿지 못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확은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라고 하면 경기부터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데, 나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여기저기 자기소개서를 냈을 즈음도 에픽하이의는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언론사들은 나름 자소서에서는 다른 직종보다 ‘자유도’가 컸다. 자소서를 반말로 써도 되고, 시를 적어도 되고, 프로그램 기획안처럼 적어내도 되고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언론사 취업 준비생들은 면접관의 뇌리에 박힐 기막힌 자소서 포맷을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게 힙합 가사 벌스를 차용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자소서가 막힐 때면 어김없이 에픽하이 1집부터 당시 최근 앨범까지 정주행한 다음 있어 보이는 가사를 자소서에 써나갔다. 이제는 흑역사가 돼버린 자소서지만 에픽하이 충성도를 증명하기 위해 민망함을 무릅쓰고 하나를 간략히 소개한다. 


  2014년에 발매된 에픽하이 ‘부르즈 할리파’ 가사 중 하나였다. ‘10년간 니들 머리위에서 날뛰는 내 랩은 더 떠들어. 층간소음. 난 세대를 넘나들어.’라는 가사는 자소서에서 ‘저는 층간소음 같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세대를 넘나드는 층간소음처럼 세대(世代)를 넘나들어 회자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겠습니다.’라는 김대중 대(大)기자나 쓸법한 소리로 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때는 이걸 쓰고 통과했다고 에픽하이에게 감사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 곧 폐기해야겠다. 


  열정이 부족한 탓인지 누구의 광팬은 돼본적이 없다. 그래도 아티스트 중에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단연 에픽하이다. 힙합 노래를 듣지도 않던 내가 중학교 이후 지금까지 하루에 한두시간씩은 귓구멍에 이어폰을 끼고 힙합 노래를 틀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 습관과 버릇은 Anno Domini 에픽하이일 수도 있지 않으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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