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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l 16. 2021

참을 수 없는 무관심의 무서움 / 이루시엔

무서운 사람

  학교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누가 제일 ‘호랑이 선생님’인지 순위를 매기곤 했다. 긴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때리는 기술 선생님, 혼낼 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수학 선생님, 성적을 깎겠다고 협박하는 과학 선생님···. 저마다 다른 선생님을 외쳤지만 모두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을 가만 놔두지 않는 선생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때 우리 무리 사이로 담임 선생님이 쑥 나타나더니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 가셨다. “너네가 방금 말한 선생님들이 제일 착한 분이야. 적어도 너네한테 관심은 있잖아.”


  무관심과 무서움. 그때도 막연하게 이해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말이 떠오르는 날이 많아졌다. 스무 살이 되고 연애를 하고 사회에서 어울리는 사람이 늘수록 담임 선생님의 말이 와닿게 됐다. 내게 관심을 두던 이들은 점차 그 관심을 내려놨다. 이제 누군가에게 내가 관심거리가 되려면 스스로 노력해야만 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은 매몰차게 관심을 끊어냈다.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려도 돌아오는 건 철저한 무시였다. 호랑이 선생님 같은 존재는 거의 없다는 것을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상대방의 관심 없이도 활발하게 재잘대는 성격이라면 좋으련마는, 그런 성격은 못 된다. 남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서 지대한 관심을 보여 줘야만 재주를 부리는 성격이다. 그런 탓에 기똥차게 저 사람이 내게 관심을 쏟는지 아닌지 정도는 잘 구분한다고 자부한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방이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 무관심 속에서 나도 같이 힘을 잃곤 했다. 세상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는 관심에 관한 가중치가 더 부여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상대방의 흐리멍덩한 눈을 보면 관심이 사그라들었다는 걸 빨리 눈치채고 슬슬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무관심으로 인한 헤어짐은 치고받고 싸우고 홧김에 헤어지자 말하는 것 보다 어쩌면 더 씁쓸하다.


  연인과 헤어지면 다시 연락하게 될까 봐 고민을 많이 한다는데, 연애 횟수에 비하면 헤어지고 내가 먼저 연락한 경우는 고작 1할 정도다. 무슨 뜻이 있어서 연락을 자제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내게 식은 상대방 관심을 마주하기가 어려워서다. 관심이 없다는 사람 붙잡고 할 말 자체가 없다. 회사에서도 후배들에게 관심 없다고, 그걸 마치 자랑처럼 떠벌리는 선배에게는 ‘네’라는 대답으로만 응수하고 만다. 어차피 각자도생이라지만, 후배가 일하든 말든 제대로 하고 있든 말든 관심 없다고 하는 선배에게 굳이 내 일을 같이 논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관심이 ‘쿨’하게 보였다. 반대는 끌린다고 했나. 내가 무서워할 바에야 내가 무서운 것이 되고 싶었다. 내 것들에게 관심을 표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어쩌면 미련하고 오지랖 넓은 푼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 또는 어떠한 일에 맺고 끊음을 잘하는 이들, 그 누구에게나 ‘관심 없다’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없는 모습이라 더 갖고 싶은 모습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무관심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날 피곤하게 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내가 먼저 놓아버렸다. 회사 돌아가는 일이나 주변 사람들 일에도 점점 더 시큰둥해졌다. ‘관심 없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됐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속으로는 화나 죽겠어도 겉으로는 ‘맘대로 해, 나는 관심없어’라는 말을 먼저 내뱉었다. 그때부터일까. 재미있는 일보다 재미없는 일이 나를 더 짓누르게 된 것이. 연락처에 점점 연락할 사람들도 줄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세상에 무관심한 만큼 난 쿨해진 걸까, 무(無)색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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