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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12. 2021

애증의 쳇바퀴 / 이루시엔

일의 기쁨과 슬픔

  최근에 신점을 보고 왔다. 무당은 나를 빤히 보더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기는 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딱히 원하던 답은 아니었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내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심지어는 속에 있는 얘기를 끄집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가 아닌 부담이 됐다. 입사 3개월도 안 돼서 ‘이 일 그만둔다’를 말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무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직운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기자 일이나 비슷한 일을 계속하겠는데?”였다. 아이고야…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십, 육십이 돼서도 별별 사람을 다 상대하면서 일을 하는 나를 상상해봤다. 벌써부터 기가 빨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묘하게 안도의 한숨도 같이 나왔다는 거다. 솔직히, 누군가 당장 기자를 그만둬도 후회 없겠냐고 물어본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당차게 ‘예’라는 대답은 못할 것 같았다.


  스물 후반부터 부쩍 업(業) 고민이 많아졌다. 이 진로가 맞는지 스스로 묻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미래가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답은 하루마다 바뀌었다. 하루는 이렇게 일하다 성격도 건강도 사람도 다 잃겠다 싶다가도 또 하루는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값진 경험이나 문화가 소중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린 지금 나의 업에 대한 결론은 ‘애증(愛憎)’이었다. 그렇다, 나는 끝없이 미워하다가도 한없이 애틋해지는 무언가에 빌어 밥을 먹고 살고 있다.


  내 일의 증(憎)은 명확하다. 마음 편하게 잠에 들고 싶다. 하루하루 기삿거리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 내가 쓰고 싶을 때만 기사를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직장인이지라 회사가 시키는 만큼 매일 기사를 발굴해 올려야 한다. 이를 발제라 하는데, 모든 악의 근원이다. 발제를 위해 하루에도 몇 명씩과 밥을 먹어야 하고, 전화를 돌려 적성에도 안 맞는 친한 척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 낯선 이들과의 만담이 끝나면 스스로에게 낯섦을 느끼는 일이 부지기수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기자가 ‘갑질’ 주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기삿거리를 물어보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돌리면  “그것도 모르느냐”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냐”는 그나마 정중한(?) 면박과 거짓말은 물론 욕설이 날아오기도 한다. 대중에게 노출된 직업인만큼 사진과 신상이 털리고 고소까지 당하는 일은 이제 면역반응이 꽤 일어났다. 지긋지긋해서 기자 그만두면 제일 먼저 번호를 바꾸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동기들과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건 애(愛)가 주는 뿌듯함도 무시 못 하기 때문이다. 공들여 쓴 기사 반응이 좋은 날, 노트북을 닫고는 ‘이 느낌에 일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내가 쓴 분석 기사를 본인 SNS에 걸고서는 이 기사를 참고하면 이슈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코멘트할 때는 뿌듯함 가득한 날이 된다. 


  남들보다 빨리 무언가를 알아내 기사를 써 세상에 알려질 때, 그리고 그 여파로 누군가 책임을 지거나 이슈가 커질 때 모든 기자가 이 단맛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하루만 더 하자’, ‘일주일만 더 하자’ 하지 않을까 싶다. 짧은 자아도취 순간이다. 사실 그렇게 특이할 것 없는 직장이다. 그럼에도 나를 아끼는 이들이 아직 자랑스럽게 내 직업을 소개해 줄 때면, 때려치우고 싶어도 조금만 더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무실에 얽매이지 않고 여기저기를 쏘다닐 수 있다는 점도 계속 퇴사의 발목을 잡는다. 


  최근 기자에서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긴 이를 만났다. ‘기렉시트’ 조언을 구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기자로 있을 때는 내가 쓰는 기사가 뭔 소용이 있나 싶죠. 생각보다 펜이 강해요.” 또 얄팍한 마음이 흔들려 애증의 쳇바퀴를 더 돌 듯싶다. 언젠간 그만두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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