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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n 29. 2021

사람을 인터넷에서 만나는 일 / 철수

인생의 신스틸러

  인터넷에서 유행이라고 하면 곧잘 따라 하고는 한다. 최근 들어는 클럽하우스가 그랬다. 몇 달 동안이나 밤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직과 함께 바빠져 시들해졌고, 결국 친해진 몇몇 이들과는 인스타나 네이버 블로그로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온라인에서 사람을 잘 만나왔던 것 같다. 소개팅 앱도 써보았지만 소개팅 앱처럼 연애대상을 만나는 방식으로 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사람을 만나는 창구로서의 인터넷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거부감은 내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인터넷 자체에 대해서 친숙하게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는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도 괜찮을 거야"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두려움과 거부감이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실제로 그렇게 사람을 만나보고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는 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게임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2021년에도 아직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게임에서 클랜 같은 것을 만들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늘었고, 소개팅 앱에 관한 통계에서도 보이듯이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꽤 주류로 떠올랐지만, 사회적 인식이 현실보다 늦다.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게임에서 만난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는 원양어선 끌려가는 거 아니냐고 했고, 지금도 친척 동생은 마니아들만의 문화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침 내가 처음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게 만든 게임은 마비노기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오덕 친목게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인 게임이니까. 애니도 잘 안 보는 내가 어떻게 마비노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환생물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게임 시스템에 "환생"이 있다는 점이 내게 매력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 서버는 "류트"로 잼민이들이 많은 서버였다. 잼민이 서버의 길드 명으로는 이상하지만, 우리 길드였던 "만취상태" 길드는 디자이너 길마 누나가 잘 만든 예쁜 배너에 혹해서 사람들이 들어오고는 했다. 그 누나가 잘 꾸려나가다가 가장 접속률이 높았던 내게 길마를 맡겨서 또 내가 몇 년 정도를 운영했었다. 원나블 정도 보는 캐주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길드 멤버들끼리는 애니와 만화 얘기보다는 마비노기 게임 공략이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물론 길드에서 구했던 연애 조언은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았다.

  우리는 한국 전역에 펼쳐져 있었기에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겨우 몇 명 정도 만났다.(길드원은 20명이 넘었었다) 온라인 캠프파이어에서 채팅으로만 만나던 사람들을 실제로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게임 캐릭터가 살아나온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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