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사람
귀신을 무서워했다. 유치원이면 졸업하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마저 졸업이 쉽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절기마다 볼 정도로 자주 만났는데, 특히 엄마와 이모가 절친해서 그 자주는 주로 외가에 쏠려 있었다. 외가 쪽에는 외삼촌이 웃긴 이야기 사촌누나가 무서운 이야기 담당이었다. 그 무서운 이야기의 희생양은 왠지 그런 이야기에 면역이 없는 나와 동생이었다. 누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당첨되던 실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 주고는 했다. 밖이 어둑어둑 해지는 밤이면 사촌누나가 이불로 우리를 덮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네 그 이야기 알아?" 우리는 그 이야기가 재밌는 이야기일지 무서운 이야기일지 모르면서 귀를 기울였다. 동생과 나는 으악 하는 비명으로 사촌누나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가끔은 너무 시끄럽다고 정색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야기꾼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에 적절한 비명을 선보었다. 그 시절 귀신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이 귀신은 뜬금없이 왁하고 등장하고 으악 하고 소리 지르는 존재였다. 그들이 무슨 슬픈 사연이 있어 귀신이 되었는지는 잘해야 한문단이고 대체로 한 문장에 가끔은 이름 단어 하나에 함축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다 너무 무서울 때는 동네 슈퍼로 달려갔다. 외할머니 동네 슈퍼는 어둑어둑한 시골 동네에서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었다. 슈퍼의 따뜻한 조명을 보고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고 나면 콩닥대던 심장도 차분해지곤 했다.
그런 나도 귀신을 졸업하게 되었다. 무서움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엑스트라 알바를 하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알바의 모집장소는 서울이었으나, 촬영 장소는 깡시골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쯤엔 사방이 어두웠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진흙 같은 어둠이었다. 하늘에는 달이 밝아서 별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별이 안 보이는 밤은 더 삭막했다. 나이가 적고 많은 단역 알바들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시골길을 걸어서 세트장을 향했다. 으스스한 새벽바람을 맞다 보면 귀신이고 뭐고 아르바이트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은 지지부진했다. 우리는 북한군 역할로 "날래 날래 오라우" 따위의 대사를 두어 개 뱉고 후다닥 뛰어서 초소를 지키러 가는 역할이었다. 감독은 크게 열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더니 몇 차례 찍고는 컷을 외쳤다. 감독은 주연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좀 더 까다로워서, 주연 배우는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연기했다. 감독의 "다시 한번만 갈게요~"하는 외침을 따라 할 수 있겠다 싶을 즈음에 촬영은 종료되었다. 그 시골길을 돌아내려 가 서울로 가는 길에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번에 영상을 볼 때쯤에 나는 드라마가, 어쩌면 공포 영화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의 귀신영화들은 사람을 소리와 화면으로 놀라게 하는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사촌누나가 해주던 귀신 이야기 같아서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의 사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귀신은 뿅 하고 등장해서 청자를 놀라게 하고는 여차 저차 해서 다시 사라지는 것이 존재 이유였다. 가끔은 저런 빈약한 스토리 위에서 연기할 연기자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대본엔 원한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라고 쓰여있지만 그 원한은 알아서 상상해야 하는 그런 대본일 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그런 귀신들은 귀엽기까지 하다. 요즘 영화의 악역들이 나오는데, 얼핏 볼 때는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지만 특정한 상황이 되면 그들은 스스로의 악함을 맘껏 보여준다. 심지어 어떤 드라마는 현실에서 노예를 부리고 강력 범죄들을 저지른 마약 카르텔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야기는 갈수록 잔인하고 자극적인 플롯을 찾아 헤매고, 거기에 실화 딱지가 붙으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잔인한 이야기는 그 일을 겪을 일 없는 자들에겐 유희에 불과한 걸까. 사람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