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게임을 하다보면 누군가가 말한다. 한판만 이기고 자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연패를 몇번 한 뒤가 좋다. 그 연패는 그 다음에 올 역전승의 풍성한 조미료가 될 거니까. 그래 승리가 아니라 역전승이다. 그냥 승리로는 꿀잠을 잘 수 없다. 다소 불리하게 시작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어느정도 게임이 무르익으면 (우리의) 결정적인 역할로 역전해서 이기는 그런 판을 만나야 꿀잠을 잘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사람들은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극적인 역전승에 열광한다. 뉴스 검색란에 역전승을 검색해보면 관련 단어로 짜릿한 극적 같은 단어가 보인다. 연애에 밀당이 있다면 스포츠엔 역전승이 있다.
게임에서의 역전승이 재밌기 위한 조건들은 꽤 상세하다. 먼저 상대와 나의 실력이 비슷해야 한다. 이왕이면 나도 상대도 컨디션이 좋아야 좋다. 어이 없는 실수로 인한 승/패보다는 잘 싸우고 이겼다! 가 좋으니까. 그 다음 요소는 약간의 불리함이다. 역전을 못할 정도로 불리하면 안되고 49:51 정도의 불리함이어도 된다. 게임 시작부터 역전의 전사가 될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되야된다. 물론 70:30으로 불리해도 재밌지만, 이기기가 너무 힘드니까. 마지막으로 역전에서 내 역할이 커야한다. 팀원과 조화를 이루지만 내가 돋보이는 그런 게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역전을 좋아한다. 일에서도 역전일 때가 제일 재밌다. 먼저 적당히 달성이 어려운 목표가 있어야 한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쉬우면 안 된다. 잡힐 듯 안 잡힐 듯 하는 목표가 최고다. 또 팀원들이 긍정적이어야 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으쌰으쌰 힘을 내서 해내려고 해야 한다. 다들 승리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직업에서의 승리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팀에 있다면 승리는 더 어려워 진다. 마지막으로는 단기 중기 장기적인 승리조건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실감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승리여야만 한다.
내가 스타트업도 역전과 닮았다. 초기 기업은 불리한 상황 속에 처해있다. 불리한 게임의 시작점처럼 풍부한 자원을 가지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팀원들의 열의가 높다. 그저 직업으로서 직무로서 일을 하는 사람보다 기업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승리가 더 구체적이고, 가까운 곳에 있다. 큰 기업의 목표는 크고 멀고 거대해서 개인이 기여하는 감각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렇게 열심히 한판만 이기고 잔 후에도 몇 주 쯤 지나면 다시 그 역전승의 감각이 떠오른다. 한번 커다란 역전승을 현실에서도 해내고 나면 오히려 삶의 에너지가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다.